아리랑 (1926년 영화) 아리랑 | |
감독 | 나운규[1] |
각본·각색 | 나운규[2] |
제작사 | 조선키네마프로덕션[3] |
개봉일 | 1926년 10월 1일[4] |
러닝타임 | 약 135분(9릴)[5] |
형태 | 무성영화 |
장르 | 드라마, 민족영화 |
출연 | 나운규, 신일선, 주인규, 남궁운 등[6] |
관련 작품 | |
현재 상태 | 소실됨 |
목차
1. 개요2. 작품 개요와 역사적 의의3. 현존 자료4. 현존 자료와 혼동된 자료5. 유실 경위6. 수색 과정
6.1. 1926년~1952년: 상영의 시대와 마지막 기록6.2. 1974년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의 장기 추적 시작6.3. 1993년~2004년: 일본인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 소장설 확산6.4. 2005년: 아베 사망과 일본 조사 착수6.5. 2005년~2010년: 아베 컬렉션 실사와 실패6.6. 2016년: 90주년 특별전과 필름 없이 기념하는 영화라는 자각6.7. 2019년: 자료 재검토와 가설의 재편6.8.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의 공식 회고6.9.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
7. 주요 가설8. 현황9. 외부 링크1. 개요 [편집]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의 무성영화로,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의 제2회 작품이자 나운규의 감독 데뷔작이다.[8]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3·1운동의 충격과 식민지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한국 초기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9]
이 문서에서 다루는 로스트 미디어의 본체는 영화 필름 원본 및 상영용 프린트이다. 작품의 존재 자체는 확실하고, 시나리오·광고·평문·촬영현장 사진·스틸 사진 같은 비필름 자료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나, 정작 본편 필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10]
즉 아리랑은 완전히 실체가 사라진 이름뿐인 전설이 아니라, 텍스트와 사진 자료는 상당수 남아 있으나 영상 필름만 소실된 대표적 한국 영화 로스트 미디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11]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3·1운동의 충격과 식민지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한국 초기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9]
이 문서에서 다루는 로스트 미디어의 본체는 영화 필름 원본 및 상영용 프린트이다. 작품의 존재 자체는 확실하고, 시나리오·광고·평문·촬영현장 사진·스틸 사진 같은 비필름 자료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나, 정작 본편 필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10]
즉 아리랑은 완전히 실체가 사라진 이름뿐인 전설이 아니라, 텍스트와 사진 자료는 상당수 남아 있으나 영상 필름만 소실된 대표적 한국 영화 로스트 미디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11]
2. 작품 개요와 역사적 의의 [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리랑》은 1919년 이후 형성된 초창기 조선영화가 외국영화 번안과 신파물에 머물러 있던 상황에서 등장해, 항일 민족정신과 당대 사회현실을 전면에 내세운 혁명적 영화로 받아들여졌다.[12]
한국영상자료원도 2016년 특별전 소개문에서, 이 영화가 개봉 당시 대중의 엄청난 호응과 사랑을 받았고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꼭 봐야 하는 민족영화였다고 정리한다.[13]
영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3·1운동의 충격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 무너진 청년 영진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여동생을 노리는 친일파 하수인을 낫으로 죽이고 체포되는 이야기로 요약된다.[14]
후대 연구와 회고에서는 이 서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억눌린 감정과 항일 정서를 대중적으로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15]
또한 이 영화의 성공은 후속작 제작으로 이어졌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30년 이구영 감독의 《아리랑 후편》, 193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3편》이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이들 역시 현재 필름을 볼 수 없다.[16]
한국영상자료원도 2016년 특별전 소개문에서, 이 영화가 개봉 당시 대중의 엄청난 호응과 사랑을 받았고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꼭 봐야 하는 민족영화였다고 정리한다.[13]
영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3·1운동의 충격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 무너진 청년 영진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여동생을 노리는 친일파 하수인을 낫으로 죽이고 체포되는 이야기로 요약된다.[14]
후대 연구와 회고에서는 이 서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억눌린 감정과 항일 정서를 대중적으로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15]
또한 이 영화의 성공은 후속작 제작으로 이어졌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30년 이구영 감독의 《아리랑 후편》, 193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3편》이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이들 역시 현재 필름을 볼 수 없다.[16]
3. 현존 자료 [편집]
아리랑이 완전한 무(無)의 상태는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은 비필름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및 텍스트 자료
한국영상자료원은 2016년 특별전 소개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시나리오와 후대에 이르러 재창조된 몇 편의 다른 <아리랑>들을 통해 그 내용과 의의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적었다.[17]
즉, 필름은 없어도 텍스트 계열 자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광고와 신문 기록
서울신문 2021년 칼럼은 1926년 《아리랑》 광고와 주제가 전승 문제를 다루며, 당시 신문 광고를 통해 작품의 홍보 양상과 관객 반응을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18]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등 당대 인쇄물은 현재도 작품의 개봉과 장면 소개를 재구성하는 주요 사료로 쓰인다.[19]
촬영현장 기념사진 및 스틸 사진
서울En의 2019년 기사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제공의 촬영현장 기념사진이 실려 있다.[20]
또한 2025년 4월 무렵 KMDb 소장품 목록에는 #1920년대 #아리랑 #장면 사진으로 정리된 스틸이 등재되어 있다.[21]
2025년 새로 발굴된 원본 스틸 사진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 보도는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장면 사진의 원본이 처음 발굴되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그전까지는 원본이 아닌 스틸 사진 10종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22]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6월호 《삼천리》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한다.[23]
시나리오 및 텍스트 자료
한국영상자료원은 2016년 특별전 소개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시나리오와 후대에 이르러 재창조된 몇 편의 다른 <아리랑>들을 통해 그 내용과 의의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적었다.[17]
즉, 필름은 없어도 텍스트 계열 자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광고와 신문 기록
서울신문 2021년 칼럼은 1926년 《아리랑》 광고와 주제가 전승 문제를 다루며, 당시 신문 광고를 통해 작품의 홍보 양상과 관객 반응을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18]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등 당대 인쇄물은 현재도 작품의 개봉과 장면 소개를 재구성하는 주요 사료로 쓰인다.[19]
촬영현장 기념사진 및 스틸 사진
서울En의 2019년 기사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제공의 촬영현장 기념사진이 실려 있다.[20]
또한 2025년 4월 무렵 KMDb 소장품 목록에는 #1920년대 #아리랑 #장면 사진으로 정리된 스틸이 등재되어 있다.[21]
2025년 새로 발굴된 원본 스틸 사진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 보도는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장면 사진의 원본이 처음 발굴되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그전까지는 원본이 아닌 스틸 사진 10종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22]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6월호 《삼천리》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한다.[23]
4. 현존 자료와 혼동된 자료 [편집]
5. 유실 경위 [편집]
한국영상자료원 2024년 웹진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필름이 유실된 무성영화 <아리랑>이라고 적고 있다.[26]
다만 후대 설명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필름 소실 원인을 단일 사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기의 손실이 중첩된 결과로 본다.
서울En의 2019년 글은 당시 필름이 인화성이 강한 질산염 필름이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보관하지 않았다면 생존 확률 자체가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27]
2025년 조선일보 보도는 김연갑의 설명을 인용해, 일제 말기 군수품 회수와 해방 이후 은 추출을 위한 소각 과정 속에서 필름이 사라졌다고 적었다.[28]
즉, 현재로서는 질산염 필름의 물리적 취약성, 전시기·해방기 재활용, 한국전쟁기의 혼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29]
또 중요한 점은 아리랑의 필름이 1926년 개봉 직후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En과 월간조선 자료는 1952년 9월 대구 만경관에서 1주일간 상영된 것이 마지막 상영 기록으로 자주 인용된다고 적는다.[30]
즉 적어도 1952년까지는 상영 가능한 프린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완전히 끊긴다.[31]
다만 후대 설명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필름 소실 원인을 단일 사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기의 손실이 중첩된 결과로 본다.
서울En의 2019년 글은 당시 필름이 인화성이 강한 질산염 필름이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보관하지 않았다면 생존 확률 자체가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27]
2025년 조선일보 보도는 김연갑의 설명을 인용해, 일제 말기 군수품 회수와 해방 이후 은 추출을 위한 소각 과정 속에서 필름이 사라졌다고 적었다.[28]
즉, 현재로서는 질산염 필름의 물리적 취약성, 전시기·해방기 재활용, 한국전쟁기의 혼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29]
또 중요한 점은 아리랑의 필름이 1926년 개봉 직후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En과 월간조선 자료는 1952년 9월 대구 만경관에서 1주일간 상영된 것이 마지막 상영 기록으로 자주 인용된다고 적는다.[30]
즉 적어도 1952년까지는 상영 가능한 프린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완전히 끊긴다.[31]
6. 수색 과정 [편집]
6.1. 1926년~1952년: 상영의 시대와 마지막 기록 [편집]
6.2. 1974년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의 장기 추적 시작 [편집]
6.3. 1993년~2004년: 일본인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 소장설 확산 [편집]
월간조선은 〈아리랑〉 필름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9월경이라고 적고, 이후 일본인 필름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고 설명한다.[37]
씨네21의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기사도 1994년부터 방송 3사와 여러 민족주의 단체들이 아리랑을 찾아 아베를 찾았다고 전한다.[38]
아베는 자신의 소장목록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항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필름 실물 공개는 거부했다.[39]
이 시기 수색의 가장 큰 특징은, 필름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아주 구체적인 대상 하나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40]
씨네21의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기사도 1994년부터 방송 3사와 여러 민족주의 단체들이 아리랑을 찾아 아베를 찾았다고 전한다.[38]
아베는 자신의 소장목록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항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필름 실물 공개는 거부했다.[39]
이 시기 수색의 가장 큰 특징은, 필름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아주 구체적인 대상 하나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40]
6.4. 2005년: 아베 사망과 일본 조사 착수 [편집]
6.5. 2005년~2010년: 아베 컬렉션 실사와 실패 [편집]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한국영상자료원 2024년 웹진은 아베 사후 일본문화청 협조 아래 총 4회의 현지 조사를 진행했고, 일본국립필름센터와 함께 2,400여 편을 검토했지만 아리랑의 흔적은 없었다고 명시한다.[45]
동아일보 2015년 기사 검색 결과와 월간조선 2016년 기사도, 2010년 8월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 소장 필름을 확인했지만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고 정리한다.[46]
씨네21의 X-파일 기사에서는 영상자료원 쪽이 당시에도 아베가 완본을 갖고 있을 확률은 10% 이하로 본다고 적었다.[47]
즉, 1990년대부터 가장 강력했던 아베 소장설은 2005~2010년 조사 과정을 거치며 크게 약화되었다.[48]
동아일보 2015년 기사 검색 결과와 월간조선 2016년 기사도, 2010년 8월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 소장 필름을 확인했지만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고 정리한다.[46]
씨네21의 X-파일 기사에서는 영상자료원 쪽이 당시에도 아베가 완본을 갖고 있을 확률은 10% 이하로 본다고 적었다.[47]
즉, 1990년대부터 가장 강력했던 아베 소장설은 2005~2010년 조사 과정을 거치며 크게 약화되었다.[48]
6.6. 2016년: 90주년 특별전과 필름 없이 기념하는 영화라는 자각 [편집]
6.7. 2019년: 자료 재검토와 가설의 재편 [편집]
2019년에는 수색의 방향이 필름 그 자체에서 주변 자료의 재검증으로 넓어졌다.
서울En에 실린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연구원의 글은, 일본 소장설은 사실상 부정되었고 북한 소장설도 가능성이 낮다며, 미국 NARA나 의회도서관에 제목이 사라진 채 남은 필름 롤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1]
같은 해 뉴스톱은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라는 기사로, 그간 널리 통용된 스틸 자료 가운데 하나를 정정했다.[52]
이 일은 아리랑 수색이 단순히 필름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남아 있는 정지 자료의 진위를 다시 검증하는 단계로 들어갔음을 보여 준다.[53]
서울En에 실린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연구원의 글은, 일본 소장설은 사실상 부정되었고 북한 소장설도 가능성이 낮다며, 미국 NARA나 의회도서관에 제목이 사라진 채 남은 필름 롤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1]
같은 해 뉴스톱은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라는 기사로, 그간 널리 통용된 스틸 자료 가운데 하나를 정정했다.[52]
이 일은 아리랑 수색이 단순히 필름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남아 있는 정지 자료의 진위를 다시 검증하는 단계로 들어갔음을 보여 준다.[53]
6.8.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의 공식 회고 [편집]
6.9.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 [편집]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는 아리랑의 원본 스틸 사진이 처음 발굴되었다고 보도했다.[56]
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의 원본이며, 당시 인쇄 기술의 한계로 화질이 나빴던 이미지보다 더 선명한 원형 자료였다.[57]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삼천리》 6월호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찾아냈다고 전한다.[58]
이 발굴은 필름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아리랑 수색사에서 매우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유는 첫째, 1926년 원작의 장면을 더 정확히 복원할 수 있는 고화질 시각 자료가 늘어났고, 둘째, 필름은 없어도 원본 사진 자료는 어딘가에서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59]
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의 원본이며, 당시 인쇄 기술의 한계로 화질이 나빴던 이미지보다 더 선명한 원형 자료였다.[57]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삼천리》 6월호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찾아냈다고 전한다.[58]
이 발굴은 필름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아리랑 수색사에서 매우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유는 첫째, 1926년 원작의 장면을 더 정확히 복원할 수 있는 고화질 시각 자료가 늘어났고, 둘째, 필름은 없어도 원본 사진 자료는 어딘가에서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59]
7. 주요 가설 [편집]
한국전쟁기 소실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명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필름이 유실된 무성영화라고 정리한다.[60]
다만 이것은 큰 틀의 설명일 뿐, 어떤 프린트가 어느 시점에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일제 말 군수품 회수·해방 후 은 추출 소각설
2025년 조선일보 보도에서 김연갑은 필름이 일제 말기 군수품으로 수거되고, 해방 이후 은 추출을 위해 소각되는 와중에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61]
후대 수색에서는 이 설명이 전시기와 전후 재활용 과정에서 초기 질산염 필름이 대거 사라졌다는 일반론과 결합해 자주 인용된다.
아베 요시시게 소장설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강력했던 가설이다. 씨네21 2005년 기사와 한국영상자료원 웹진은 아베의 소장목록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한다.[62]
그러나 2005년 이후 일본 문화청 및 일본국립필름센터 조사에서 한국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으면서 현재는 크게 약화되었다.[63]
아베의 제2 보관처/제2 관리자설
월간조선은 김연갑의 말을 인용해, 아베가 오사카 근처 섬들에 필름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 다른 사람이 관리하는 필름창고를 언급한 정황을 소개한다.[64]
즉 아베 집안에서 안 나왔다고 끝난 게 아니라, 다른 장소에 분산 보관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남기는 설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 국가영화문헌고 소장설
한국전쟁 이후 또는 김정일 시기 북한이 해외 영화 필름을 대량 수집했다는 점 때문에 오래전부터 나온 가설이다.[65]
그러나 정종화 연구원은 북한이 정말 가지고 있었다면 숨겨만 두지 않고 어떻게든 활용했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66]
중국 또는 러시아 상영본 생존설
씨네21 2005년 기사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은 아베 컬렉션과 별개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아리랑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상영 기록 때문에 중국 쪽 확률을 더 높게 본다는 설명이 붙었다.[67]
이 설은 지금도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구체적 성과가 나온 적은 없다.
미국 NARA/LOC 제목 없는 롤설
2019년 서울En 기고문은, 아리랑이 해방 전 일본에서도 상영되었고 전후 일본이 GHQ 점령기를 거쳤기 때문에, 미군이 노획한 필름 가운데 제목과 크레디트가 사라진 무명 롤 형태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이나 의회도서관(LOC)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68]
이것은 현재 가장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으면서도 현실적인 해외 소재 가설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유명한 스틸사진 오인설
필름의 소재와는 별개지만, 수색사에서 중요한 보조 가설이다. 2019년 뉴스톱은 그간 교과서 등에 널리 쓰인 사진 가운데 하나가 1926년 1편 사진이 아니라고 정정했다.[69]
이 때문에 남아 있는 시각 자료를 토대로 본편을 재구성할 때도 자료 비판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70]
8. 현황 [편집]
2026년 현재, 나운규의 1926년 영화 《아리랑》 본편 필름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71]
따라서 로스트 미디어 분류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발견됨이 아니라 소실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 광고, 기사, 촬영현장 사진, 스틸 사진 같은 주변 자료이기 때문이다.[72]
다만 아리랑의 수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이 보여 주듯이, 필름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실체를 더 잘 복원할 수 있는 1차 자료는 아직도 개인 소장품이나 잡지, 아카이브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73]
즉, 이 작품은 필름 발굴이라는 최종 목표에서는 아직 미제이지만, 주변 자료 복원 차원에서는 지금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장기 수색 대상이다.[74]
따라서 로스트 미디어 분류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발견됨이 아니라 소실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 광고, 기사, 촬영현장 사진, 스틸 사진 같은 주변 자료이기 때문이다.[72]
다만 아리랑의 수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이 보여 주듯이, 필름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실체를 더 잘 복원할 수 있는 1차 자료는 아직도 개인 소장품이나 잡지, 아카이브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73]
즉, 이 작품은 필름 발굴이라는 최종 목표에서는 아직 미제이지만, 주변 자료 복원 차원에서는 지금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장기 수색 대상이다.[74]
9. 외부 링크 [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아리랑
KMDb - 아리랑
씨네21 - 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 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한국영상자료원 -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서울En -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뉴스톱 - 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관련 기사 보관
월간조선 -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조선일보/다음 -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1]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2]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3]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4]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5] 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6] 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
신일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8]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9]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10]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11]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12]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14]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15] 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서울신문, 2021-04-12.[16]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17]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18] [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서울신문, 2021-04-12.[19]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20]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21] KMDb 컬렉션 목록 - 아리랑, KMDb, 검색 결과 스니펫.[22]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23]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24] 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
[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25] 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
[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26]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27]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28]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29]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30]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31]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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