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전 설공찬환혼전 / 설공찬이 薛公瓚傳 / 薛公瓚還魂傳 | |
저자 | 채수 |
제작 국가 | |
제작 시기 | 중종 |
형태 | 소설 |
현재 상태 | 부분적으로 발견됨 |
1. 개요 [편집]
조선 중종때 지어진 엑소시스트 소설. 조선왕조실록에는 설공찬전(薛公瓚傳)으로 나오고 어숙권의 패관잡기 2권에는 설공찬환혼전(薛公瓚還魂傳), 즉 '설공찬의 혼이 돌아온 이야기'로 나와있다.
2. 상세 [편집]
내용부터가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귀신들이 다른사람 몸에 빙의하고, 몸에 들어간 설공찬이 저승 이야기를 하는데, "이승에서 어진 재상이면 죽어도 재상으로 다니고, 이승에서 비록 여편네 몸이라도 잠깐이나 글 곧잘하면 저승의 아무런 소임이나 맡아 관직에 나아가고, 좋게 있으며, 이승에서 비록 흉한 몰골로 죽어도 임금께 충성과 신의를 다하면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도 저승에 가도 좋은 벼슬하고, 비록 여기서 임금이라도 주전충[1]같은 사람이면 다 지옥에 들어갔다. "라는 내용으로 인해 백성들에게는 인기 폭발이었지만 이 소설로 인해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己酉/臺諫啓前事。 憲府啓: "蔡壽作《薛公瓚傳》, 其事皆輪回、禍福之說, 甚爲妖妄。 中外惑信, 或飜以文字, 或譯以諺語, 傳播惑衆。 府當行移收取, 然恐或有不收入者, 如有後見者治罪。" 答曰: "《薛公瓚傳》, 事涉妖誕, 禁戢可也。 然不必立法。 餘不允。"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었다. 헌부가 아뢰기를,
"채수(蔡壽)가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妖妄)한 것인데 >중외(中外)가 현혹되어 믿고서, 문자(文字) 로 옮기거나 언어(諺語) 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킵니다. 부(府)에서 마땅히 행이(行移)하여 거두어 들이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다. 그러나 법을 세울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결국 설공찬전은 인기도서가 되자 중종에게까지 이 소식이 들어가는데, 사헌부에서는 설공찬전이 한문과 한글로 번역하여 전파되어 백성들을 홀리게 한다는 내용으로 책을 압수하고 소장자는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설공찬전만 금지하고 처벌은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命燒《薛公瓚傳》, 其隱匿不出者, 依妖書隱藏之律, 治罪。
《설공찬전(薛公瓚傳)》을 불살랐다. 숨기고 내어 놓지 않는 자는, 요서 은장률(妖書隱藏律)로 치죄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사흘 뒤 설공찬전을 압수해 태우고 몰래 소장한 이는 처벌하라고 명했다.
○命罷仁川君蔡壽職, 以其撰《薛公瓚傳》, 造怪誕之說, 形諸文字, 使人信惑。 依左道亂正扇惑人民律, 憲府照以當絞, 只命罷職。
인천군(仁川君) 채수(蔡壽)의 파직을 명했다. 그가 지은 《설공찬전(薛公瓚傳)》이 괴이하고 허탄한 말을 꾸며서 문자로 나타낸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어 혹하게 하기 때문에 ‘부정한 도로 정도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하여 미혹케 한 율(律)’에 의해 사헌부가 교수(絞首)로써 조율했는데, 파직만을 명한 것이다.
이후 채수를 파직하고 사헌부에서 백성을 선동한 죄로 교수형에 처하자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거절하고 파직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설공찬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싶었지만... 이문건의 묵재일기 3권 안쪽 부분에 누군가 "설공찬이"로 시작하는 설공찬전을 필사하였고 1996년 봄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실에서 묵재일기 탈초를 의뢰받은 서강대학교 이복규 교수가 3권 내용을 확인 하던 도중 책 뒷면에 다른 한글 필사본들 사이에 필사되어 있는 설공찬전 필사본 일부를 다시 발견하였다.[2] 일부인 이유는 이 필사본이 일부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3][4]
이렇게 설공찬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싶었지만... 이문건의 묵재일기 3권 안쪽 부분에 누군가 "설공찬이"로 시작하는 설공찬전을 필사하였고 1996년 봄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실에서 묵재일기 탈초를 의뢰받은 서강대학교 이복규 교수가 3권 내용을 확인 하던 도중 책 뒷면에 다른 한글 필사본들 사이에 필사되어 있는 설공찬전 필사본 일부를 다시 발견하였다.[2] 일부인 이유는 이 필사본이 일부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3][4]
3. 내용 [편집]
- <설공찬이>(묵제일기 원문)에 대한 내용의 해독과 그 각주는 직접 썼습니다. (사용자:Haneul)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편집 요약이나 각주로 사유와 함께 교정을 부탁드립니다.
- 퍼가신다면 출처 부탁드리겠습니다.
- 원문의 "굴실"은 구우실(그위실, 구실)로 추정하여 해당 각주를 붙였습니다.
- 또한 "셜위도 허리 □□고" 부분은 "민회ᄂᆞᆫ 두어재ᄂᆞᆫ 안잣더라" 내용에서 추정하여 "안잣"으로 직접 채운 부분입니다.
3.1. 묵재일기 필사본(설공찬이) [편집]
셜공찬이
녜 슌챵의셔 사던 셜튱난이ᄂᆞᆫ 지극ᄒᆞᆫ 가문읫 사ᄅᆞᆷ이라 ᄀᆞ장 가ᄋᆞᆷ여더니 제 ᄒᆞᆫ ᄯᆞᆯ이 이셔 셔방 마ᄌᆞ니 무ᄌᆞᄉᆡᆨᄒᆞ야셔 일 죽고 아이 이쇼듸
일홈이 셜공찬이오 ᄋᆡ명은 슉동이러니 져믄 적브터 글ᄒᆞ기ᄅᆞᆯ 즐겨 한문과 문장 제법을 쇠 즐겨 닑고 글스기ᄅᆞᆯ ᄀᆞ장 잘ᄒᆞ더니 갑ᄌᆞ년의 나히 스믈히로듸 댱가 아니 드럿더니 병ᄒᆞ야 죽겨ᄂᆞᆯ 셜공찬의 아바니난 예엇브 너겨 신쥬 ᄆᆡᆼ그라 두고 죠석의 ᄆᆡ일 우러 제ᄒᆞ더니 병인년의 삼년 디나거ᄂᆞᆯ아바님이 아ᄋᆡᄯᆞᆯᄃᆞ려 닐오듸 주근 아ᄃᆞ리 댱가 아니 드려셔 주그니 제 신쥬 머기 리 업ᄉᆞ니 구쳐 무ᄃᆞ리로다 ᄒᆞ고 ᄒᆞᆯᄂᆞᆫ 머리 ᄡᅡ뎟다가 제 분토 겨틔 뭇고 하 셜워 닐웨ᄅᆞᆯ 밥 아니 먹고 셜워ᄒᆞ더라 셜튱난의 아ᄋᆡ 일홈은 셜튱ᄉᆔ라 튱ᄉᆔ 아ᄃᆞᄅᆡ 일홈은 공팀이오 ᄋᆞ명은 업동이니 셔으ᄅᆞᆫ셔 업살고 업죵[5]의 아ᄋᆡ 일홈은 업동[6]이니 그ᄂᆞᆫ 슌창셔 사더니 업동이[7]ᄂᆞᆫ 져머셔브터 글을 힘서 ᄇᆡ호듸 업동과 반만도 몯ᄒᆞ고 글스기도 업동이만 몯ᄒᆞ더라 졍덕 무신년 칠월 스무닐웬날 ᄒᆡ 니르대 예 튱ᄉᆔ 집ᄋᆡ 올졔 인ᄂᆞᆫ 아희 ᄒᆡᆼ금가지 닙흘 혀더니 고ᄋᆞᆫ 겨집이 공듕으로셔 ᄂᆞ려와 춤추거ᄂᆞᆯ 기동이 ᄀᆞ장 놀라 졔 지집의 계유 드려가니 이ᄋᆞᆨ고 튱ᄉᆔ 집의셔 짓궐 소ᄅᆡ 잇거ᄂᆞᆯ 무ᄅᆞ니 공팀이 뒷가ᄂᆡ 갓다가 병 어더 다ᄒᆡ 업더뎌다가 ᄀᆞ쟝 오라게야 인긔ᄅᆞᆯ ᄎᆞ려도 긔운이 미치고 ᄂᆞᆷ과 다ᄅᆞ더라 셜튱ᄉᆔ 마ᄎᆞᆷ 싀골 갓거ᄂᆞᆯ 즉시 죵이 이련 줄을 알왼대 튱ᄉᆔ 울고 올라와 보니 병이 더옥 디터 그지업시 셜워ᄒᆞ거ᄂᆞᆯ 엇디 이려ᄒᆞ거뇨 ᄒᆞ야 공팀이ᄃᆞ려 무ᄅᆞᆫ대 ᄌᆞᆷ〻[8]ᄒᆞ고 누어셔 ᄃᆡ답 아니ᄒᆞ거ᄂᆞᆯ 제 아바님 ᄉᆞᆯ하뎌 울고 의심ᄒᆞ니 요긔로온 귓거ᄉᆡ 빌믜 될가 ᄒᆞ야도로 김셕산이ᄅᆞᆯ 쳥□□[ᄒᆞ니?] 셕산이ᄂᆞᆫ 귓궛애 ᄒᆞᄂᆞᆫ 방밥ᄒᆞᄂᆞᆫ 사□[ᄅᆞᆷ?]이라라[11] 셕산이 와셔 복셩화 나모채로 ᄀᆞ리티고 방법ᄒᆞ여 부작ᄒᆞ니 그 귓저시 니로듸 나ᄂᆞᆫ 겨집이모로 몯 이긔여 나거니와 내 오라비 공찬이ᄅᆞᆯ ᄃᆞ려오리라 ᄒᆞ고 가셔 이ᄋᆞᆨ고 공찬이 오니 그 겨집은 업더라 공찬이 와셔 제 ᄉᆞ촌 아ᄋᆞ 공팀이ᄅᆞᆯ 붓드러 입을 비러 닐오ᄃᆡ 아ᄌᆞ바님이 ᄇᆡᆨ단으로 양ᄌᆡ하시나 오직 아ᄌᆞ바님 아ᄃᆞᆯ 샹ᄒᆞᆯ ᄲᅮᆫ이디위 나ᄂᆞᆫ ᄆᆞ양 하ᄂᆞᆯ ᄀᆞᄋᆞ로 ᄃᆞᆫ니거든 내 몸이야 샹ᄒᆞᆯ 주리 이시리잇가 ᄒᆞ고 ᄯᅩ 닐오듸 ᄯᅩ 왼 ᄉᆞᆺ ᄭᅩ와 집문 밧ᄭᅳ로 두르면 내 엇디 들로 ᄒᆞ여ᄂᆞᆯ 튱ᄉᆡ 고디듯고 그리ᄒᆞᆫ대 공찬이 웃고 닐오듸 아ᄌᆞ바님이 하 ᄂᆞᄆᆡ 말을 고디드르실ᄉᆡ 이리ᄒᆞ야 소기ᄋᆞ온이 과연 내슐듕ᄋᆡ 바디시거이다 ᄒᆞ고 일로브터ᄂᆞᆫ 오명가명ᄒᆞ기ᄅᆞᆯ 무샹ᄒᆞ더라 공찬의 넉시 오면 공팀의 ᄆᆞᄋᆞᆷ과 긔운이 아이고 믈러 집 뒤 ᄉᆞᆯ고 나모 뎡ᄌᆞ애 가 안자더니 그 넉시 밥을 ᄒᆞᄅᆞ 세번식 먹으듸 다 왼손으로 먹거ᄂᆞᆯ 튱ᄉᆔ 닐오듸 예 아래 와신 제ᄂᆞᆫ 올ᄒᆞᆫ 손으로 먹더니 엇디 왼손로 먹ᄂᆞᆫ다 ᄒᆞ니 공찬이 닐오듸 뎌ᄉᆡᆼ은 다 왼손으로 먹ᄂᆞ니라 ᄒᆞ더라 공찬의 넉시 나리면 공팀의 ᄆᆞᄋᆞᆷ ᄌᆞ연ᄒᆞ야 도로 드러안잣더니 그러ᄒᆞᄆᆞ로 하 셜워 밥을 몯 먹고 목노하 우니 옷시 다 젓더라 제 아바님ᄭᅴ ᄉᆞᆯ오듸 나ᄂᆞᆫ ᄆᆡ일 공찬의게 보채여 셜워이다 ᄒᆞ더니 일로브터ᄂᆞᆫ 공찬의 넉시 제 문덤의 가셔 계유□ᄃᆞᆯ이러니 튱ᄉᆔ 아ᄃᆞᆯ 병ᄒᆞᄂᆞᆫ 줄 셜이 너겨 ᄯᅩ 김셕산의손듸 사ᄅᆞᆷ 브러 오라 ᄒᆞᆫ대 셕산이 닐오듸 쥬사 ᄒᆞᆫ 냥을 사 두고 나ᄅᆞᆯ 기ᄃᆞᆯ오라 내 가면 영혼을 제 무덤 밧긔도 나디 몯호리라 ᄒᆞ고 이 말을 ᄆᆞ이 닐러 그 영혼 들리라 ᄒᆞ여ᄂᆞᆯ 브린 사ᄅᆞᆷ이 와 그 말ᄉᆞᆷ을 ᄆᆞ이 니ᄅᆞᆫ대 공찬의 넉시 듯고 대로ᄒᆞ야 닐오듸 이러ᄐᆞ시 나ᄅᆞᆯ ᄠᆞ로시먼 아ᄌᆞ바님 혜용을 변화호링이다 ᄒᆞ고 공팀의 ᄉᆞ시ᄅᆞᆯ 왜혀고 눈을 쁘니 ᄌᆞ의 ᄌᆡ야지고 ᄯᅩ 혀도 ᄑᆞ 배여내니 고 우ᄒᆡ 오ᄅᆞ며 귓뒷겨ᄐᆡ도 나갓더니 늘근 죵이 겨틔셔 병 구의ᄒᆞ다가 ᄭᆡ온대 그 죵조차 주것다가 오라개야 기니라 공팀의 아바님이 하두러 넉ᄉᆞᆯ 일혀 다시 공찬이 향ᄒᆞ야 비로듸 셕산이ᄅᆞᆯ 노여 브ᄅᆞ디 말마 ᄒᆞ고 하 ᄇᆡ니 ᄀᆞ장 오라긔야 얼굴이 잇더라 ᄒᆞᆯᄅᆞᆫ 공찬이 유무ᄒᆞ야 ᄉᆞ촌 아ᄋᆞ 셜워와 윤ᄌᆞ신이와 둘흘 ᄒᆞᆷ긔 블러오니 둘히 ᄒᆞᆷ긔 와 보니 당시 공찬의 넉시 아니 왓더라 공팀이 그 사ᄅᆞᆷᄃᆞ러 닐오듸 나ᄂᆞᆫ 병ᄒᆞ야 주그련다 ᄒᆞ고 이윽이 고개 ᄲᅡ디여셔 뉸믈을 흘리고 벼개예 눕거ᄂᆞᆯ 보니 그 녕혼이 몯 미쳐 왓더니 이윽고 공팀의 말이 ᄀᆞ장 졀커ᄂᆞᆯ 제 아바님이 닐오듸 녕혼이 ᄯᅩ 오도다 ᄒᆞ더라 공팀이 기지게 혀고 니러 안자 머리 긁고그 사ᄅᆞᆷ 닐오듸 내 너희와 닐별ᄒᆞ연 디 다ᄉᆞᆺ ᄒᆡ니 ᄒᆞ마 머리 조쳐시니 ᄀᆞ장 슬픈 ᄠᅳ디 잇다 ᄒᆞ여ᄂᆞᆯ 뎌 사ᄅᆞᆷ이 그 말 듯고 하 긔특이 너겨 뎌ᄉᆡᆼ 긔별을 무ᄅᆞᆫ대 뎌ᄉᆡᆼ 말을 닐오듸 뎌ᄉᆡᆼ은 바다ᄭᆞ이로듸 하 머러 에셔 게 가미 ᄉᆞ십니로듸 우리 ᄃᆞᆫ로ᄆᆞᆫ 하 ᄲᆞᆯ라 예셔 슐시예 나셔 ᄌᆞ시예 드러가 튝시예 셩문 여러든 드러가노라 ᄒᆞ고 ᄯᅩ 닐오듸 우리나라 일홈은 단월국이라 ᄒᆞ니라 듕국과 제국의 주근 사ᄅᆞᆷ이라 이 ᄯᅡ해모ᄃᆞᆫ니 하 만ᄒᆞ야 수ᄅᆞᆯ 혜디 몯ᄒᆞ니라 ᄯᅩ 우리 님금 일홈은 비사문텬왕이라 므틧 사ᄅᆞᆷ이 주거ᄂᆞᆫ 졍녕이 이ᄉᆡᆼ을 무로듸 네 부모 동ᄉᆡᆼ 족친ᄃᆞᆯ 니ᄅᆞ라 ᄒᆞ고 쇠채로 티거든 하 맛디 셜워 니ᄅᆞ면 ᄎᆡᆨ 샹고ᄒᆞ야 명이 진듸 아녀시면 두고 진ᄒᆞ야시면 즉시 년좌로 자바가더라 나도 주겨 졍녕이 자펴가니 쇠채로 텨 뭇거ᄂᆞᆯ 하 맛디 셜워 몬져 주근 어마이과 누으님을 니ᄅᆞ니 ᄯᅩ 티려커ᄂᆞᆯ 증조 셜위 시긔 가 유무 바다다가 ᄀᆞᄋᆞᆷ아ᄂᆞᆫ 관워의게 뎡ᄒᆞ니 노터라 셜위도 예셔 대ᄉᆞ셩 ᄒᆞ엇더?디?시피 뎌ᄉᆡᆼ의 가도 됴ᄒᆞᆫ 벼ᄉᆞᆯ ᄒᆞ고 잇더라 아래 말을 여긔 ᄒᆞ듸 이ᄉᆡᆼ이셔 어진 ᄌᆡ샹이면 쥬거도 ᄌᆡ샹으로 ᄃᆞᆫ니고 이ᄉᆡᆼ애셔 비록 녀편네 몸이리도 잠간이나 글 곳 잘ᄒᆞ면 뎌ᄉᆡᆼ의 아ᄆᆞ란 소임이나 맛드면 굴실[12]이 혈ᄒᆞ고 됴히 인ᄂᆞ니라 이ᄉᆡᆼ애셔 비록 흉죵ᄒᆞ여도 님금긔 튱신ᄒᆞ면 간ᄒᆞ다가 주근 사ᄅᆞᆷ이면 뎌ᄉᆡᆼ애 가도 죠ᄒᆞᆫ 벼ᄉᆞᆯᄒᆞ고 바록 예셔 님금이라도 쥬젼튱ᄀᆞᄐᆞᆫ 사ᄅᆞᆷ이면 다 디옥의 드렷더라 쥬젼튱 님금이 이ᄂᆞᆫ 당나라 사ᄅᆞᆷ이라 젹션 곳 만히 ᄒᆞᆫ 사ᄅᆞᆷ이면 예셔 비록 쳔히 ᄃᆞᆫ니다가도 ᄀᆞ장 품노피 ᄃᆞᆫ니더라 셜이 아니ᄒᆞ고 예셔 비록 존구히 ᄃᆞᆫ니다가도 젹블션 곳 ᄒᆞ면 뎌ᄉᆡᆼ의 가도 슈고로이 어엇비 ᄃᆞᆫ니더라 이ᄉᆡᆼ애셔 존구히 ᄃᆞᆫ니고 ᄂᆞᆷ의 원의 일 아니ᄒᆞ고
악덕 곳 업ᄉᆞ면 뎌ᄉᆡᆼ의 가도 구히 ᄃᆞᆫ니고 이ᄉᆡᆼ애셔 사오나이 ᄃᆞᆫ니고 각별이 공덕 곳 업ᄉᆞ면 뎌ᄉᆡᆼ의 가도 그 가지도 사오나이 ᄃᆞᆫ니더라 민휘 비록 이ᄉᆡᆼ애셔 특별ᄒᆞᆫ ᄒᆡᆼ실 업서도 쳥념타 ᄒᆞ고 게 가 됴ᄒᆞᆫ 벼ᄉᆞᆯᄒᆞ엿더라 염나왕 인ᄂᆞᆫ 궁궐이 장대ᄒᆞ고 위엄이 ᄀᆞ장 셩ᄒᆞ니 비록 듕님금이라도 밋디 몯ᄒᆞ더라 염나왕이 ᄉᆞ쥬ᄒᆞ면 모든 나라 님금과 어진 사ᄅᆞᆷ이 나노느러니 안치고 녜악을 ᄡᅳ더라 ᄯᅩ 거긔 안ᄌᆞᆫ사ᄅᆞᆷᄃᆞᆯ 보니 설위도 허리 □□[안잣?]고 민회ᄂᆞᆫ 아래로서 두어재ᄂᆞᆫ 안잣더라 ᄒᆞᆯᄅᆞᆫ 션화황뎨 신하 애박이ᄅᆞᆯ 염나왕긔 브려 아므ᄂᆞᆫ 나의 ᄀᆞ장 어엿비 너기ᄂᆞᆫ 사ᄅᆞᆷ이러니 ᄒᆞᆫ ᄒᆡ만 자바오디 마ᄅᆞ쇼셔 쳥ᄒᆞ여ᄂᆞᆯ 염나왕이 닐오듸 이ᄂᆞᆫ 텬ᄌᆞ의 말ᄉᆞᆷ이라 거ᄉᆞ디 몯ᄒᆞ고 브드이 드ᄅᆞᆯ거시어니와 ᄒᆞᆫ ᄒᆡᄂᆞᆫ 너모하니 ᄒᆞᆫ ᄃᆞᆯ만 주노이다 ᄒᆞ여ᄂᆞᆯ 애바기 다시 ᄒᆞᆫ ᄒᆡ만 주쇼셔 ᄉᆞᆯ와ᄂᆞᆯ 염나왕이 대로ᄒᆞ야 닐오듸 황뎨 비록 턴ᄌᆡᆫᄃᆞᆯ 사ᄅᆞᆷ 주기머 사ᄅᆞ며 ᄒᆞ기ᄂᆞᆫ 다 내 권손의 다 가졋거ᄃᆞᆫ 엿디 다시곰 비러 내게쳥ᄒᆞᆯ 주리 이시료 ᄒᆞ고 아니 듯거ᄂᆞᆯ 셩홰 드ᄅᆞ시고 즉시 위의 ᄀᆞ초시고 친히 가신대 염나왕이 자내ᄂᆞᆫ 븍벅의 쥬홍ᄉᆞ 금교ᄋᆡ 노코 안고 황뎨란 남벅의 교상의 안치고 황뎨 쳥ᄒᆞ던 사ᄅᆞᆷ을 즉시 자바오라 ᄒᆞ여 닐오듸 이 사ᄅᆞᆷ이 죄 듕코 말을 내니 그 손이 ᄲᆞᆯ리 ᄉᆞᆯᄆᆞᄅᆞ라 ᄒᆞ니 셩화 황뎨
3.1.1. 해독 [편집]
설공찬이
옛날, 순창에서 살던 설충란이는 지극한 가문의 사람이었다. 많이 부유했고 제 한 딸이 있어 서방 맞으니 무자식해서 일찍 죽고 아이 있되
이름이 설공찬이오, 아명은 숙동이니 젊을 때 부터 글하기를 즐겨 한문과 문장, 제법을 꽤 즐겨 읽고 글쓰기를 가장 잘했으나 갑자년 나이 스물에 장가 아니 들었더니 병걸려 죽거늘 설공찬의 아버지는 불쌍히 여겨 신주 만들어 두고 조석에 매일 울어 제사 지내더니 병인년 삼년 지나거늘아버님이 아이딸더려 이르되 "죽은 아들이 장가 아니 들어서 죽으니 제 신주 먹일 이 없으니 마지못해 묻으리로다" 하고 하룬 멀리 싸뒀다가 제 분토 곁에 묻고 많이 서러워 이레를 밥 아니 먹고 서러워하더라. 설충란의 아이 이름은 설충수다. 충수 아들의 이름은 공침이고 아명은 업동이니 서울에서 업혀살고 업동의 아이 이름은 업종이니 그는 순창에서 살더니 업종이는 젊어서부터 글에 힘써 배우되 업동의 반만도 못하고, 글쓰기도 업동이만 못하더라 정덕 무진년 칠월 스물일곱날 해 이를때에 충수 집에 올 제, 있는 아이가 행금가지 잎을 당기더니 고운 계집이 공중에서 내려와 춤추거늘 그 아이가 매우 놀라 제 집에 겨우 들어가니 이윽고 충수 집에서 짓거리는 소리가 있어 물으니, 공침이 뒷간에 갔다가 병 얻어 땅에 엎어졌다가 한참 오래돼서 인기를 차려도 기운이 미치고 남과 다르더라. 설충수 마침 시골 갔거늘 즉시 종이 이런 줄을 아뢰는데, 충수 울고 올라와보니 병이 더욱 짙어 그지없이 서러워하거늘 "어찌 이러한건가?" 하여 공침더려 묻는데 잠잠하고 누워서 대답 아니하거늘 제 아버님 쓰러져 울고 의심하니 요기로운 귓것이 빌미 될가 하여도로 김석산이를 청하니? (석산이는 귓것에 하는 방법하는 사람?이라) 석산이 와서 복숭아 나무채로 후려치고 방법하여 부적 붙이니 그 귓것이 이르되 "나는 계집이므로 못 이겨 나기지만 내 오라비 공찬이를 데려오리라" 하고 가서 이윽고 공찬이 오니 그 계집은 없더라. 공찬이 와서 제 사촌 아우 공침이를 붙들어 입을 빌려 이르되 "숙부님이 백단[15]으로 양재[16]하시나 오직 숙부님 아들이 상할 뿐이지 나는 매번 하늘 가운데로 다니거늘 내몸이야 상할 줄이 있겠습니까?" 하고 또 이르되 "또 왼 새끼 꼬아 집문 밖으로 두르면 내 어찌 들어가거거늘" 퉁수 곧이듣고 그리하는데 공찬이 웃고 이르되 "숙부님이 많이 남의 말을 곧이들으시니 이리하여 속여오니 과연술중에 빠지신겁니다" 하고 이로부터는 오며가며 하기를 무상히 하더라. 공찬의 넋이 오면 공침의 마음과 기운이 아니고 물러 집 뒤 살고 나무 정자에 가 앉았더니 그 넋이 밥을 하루 세번ᄊퟄᆨ 먹되 다 왼손으로 먹거늘 충수 이르되 "예전 아래 오신 제는 오른손으로 먹더니 어찌 왼손으로 먹는가?" 하니 공찬이 이르되 "저승은 다 왼손으로 먹느니라" 하더라. 공찬의 넋이 나르면 공침의 마음 자연스럽게 도로 들어앉으니 그러하므로 많이 서러워 밥을 못 먹고 목놓아 우니 옷이 다 젖더라. 제 아버님께 사뢰되 "나는 매일 공찬에게 보채여 서럽습니다" 하더니 이로부터는 공찬의 넋이 제 무덤에 가서 겨우□달이니 충수 아들 병든 줄 서럽게 여겨 또 김석산에게 사람 부려 오라 한데 , 석산이 이르되 "주사 한냥을 사두고 나를 기다려라. 내 가면 영혼을 제 무덤 밖에도 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이 말을 크게 일러 그 영혼에게 들리게 해라" 하거늘 부린 사람이 와 그 말씀을 크게 이르는데 공찬의 넋이 듣고 대로[大怒]하여 이르되 "이렇듯이 나를 따르시면 숙부님 혜용[18]을 변화시키겠습니다" 하고 공침의 사지를 쎄게[19] 당기고 눈을 뜨니 눈동자가 조여지고 또 혀도 파 배어내니 그 위에 오르며 귀 뒷곁에도 나갔더니 늙은 종이 곁에서 병 구의[20]하다가 깨는데 그 종조차 죽었다가 오래되서 기운 차리더라. 공침의 아버님이 많이두려워하여 넋을 잃어 공찬이 항하여 빌되, "석산이를 놓아[21] 부르지 말마" 하고 많이 비니 한참 오래되니 (원래) 얼굴이 있더라. 하룬 공찬이 있는지 없는지[유무] 보러 사촌 아우 설원이와 윤자신이와 둘을 함께 불러 오니 둘이 함께 와 보니 당시 공찬의 넋이 아니 왔더라. 공침이 그 사람더러 이르되 "나는 병걸려 죽으련다" 하고 이윽고 고개 빠져서 눈물을 흘리고 베개에 눕거늘 보니 그 영혼이 미쳐 못 왔더니 이윽고 공침의 말이 가장 애절커늘 제 아버님이 이르되 "영혼이 또 오도다"하더라. 공침이 기지게 켜고 일러 앉아 머리 긁고그 사람 이르되 "내 너희와 이별하였는지 다섯 해니 이미 멀리 쫒겨났으니 가장 슬픈 뜻이 있다." 하거늘 저 사람이 그 말 듣고 많이 기특게 여겨 저승 기별을 물은되 저승 말을 이르되 "저승은 바닷가이로되, 많이 먼곳에 있어 거기 감이 사십리로되 우리 다님은 많이 빨라 여기서 거 술시에 나서 자시에 들어가 축시에 성문 열어두면 들어가노라" 하고 또 이르되 "우리나라 이름은 단월국이라" 하니라. (중국과 제국의 죽은 사람이라 이 땅에모든 이 많고 많아 수를 헤지 못하니라) 또 우리 임금 이름은 비사문천왕이라. 뭍의 사람이 죽거늘 정녕 이생[이승]을 묻되 "네 부모 동생 족친[24]들 이르라" 하고 쇠채로 치거늘 많이 맞기 서러워 이르면 책 상고[25]하여 명이 지지 아니시면 두고 졌다면 즉시 연좌로 잡아가더라. 나도 죽어 정녕 잡혀가니 쇠채로 쳐 묻거늘 많이 맞기 서러워 먼저 죽은 어머니와 누님을 이르니 또 치려거늘, 증조 설위 시긔가 있는지 없는지[유무] 받아다가 잘[27] 아는 관원에게 정하니 놓더라. 설위도 여기서 대사성 하였었지싶이 저생[저승]에 가도 좋은 벼슬 하고 있더라. 예전 말을 여기 하되 "이생[이승]에서 어진 재상이면 죽어도 재상으로 다니고, 이생[이승]에서 비록 여편네 몸이라도 잠깐이나 글 곧잘하면 저승의 아무런 소임이나 맡으면 관직에 나아가[31]고, 좋게 있느니라. 이생[이승]에서 비록 흉종[33]하여도 임금께 충신[34]하면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저생[저승]에 가도 좋은 벼슬하고 비록 여기서 임금이라도 주전충같은 사람이면 다 지옥에 들어갔더라. (주전충 임금이 이는 당나라 사람이라) 적선만 많이 한 사람이면 여기서 비록 천히 다니다가도 가장 품높이 다니더라. 서럽지 아니하고 여기서 비록 존귀하게 다니더라도 적불선[36]만 하면 저생[저승]에 가도 수고롭게 불쌍히 다니더라. 이생[이승]에서 존귀하게 다니고 남의 원[39] 일 아니하고
악덕만 없으면 저생[저승]에 가도 귀하게 다니고 이생[이승]에서 사납게 다니고 각별히 공덕만 없으면 저생[저승]에 가도 그 가지[43]도 사납게 다니더라. 민휘 비록 이생[이승]에서 특별한 행실 없어도 청렴타 하고 거기 가 좋은 벼슬 하였더라. 염라왕 있는 궁궐이 장대하고 위엄이 가장 성하니[45] 비록 중국 임금이라도 믿지 못하더라. 염라왕이 사주하면 모든 나라 임금과 어진 사람이 나눠 느러 앉히고 예약[46]을 쓰더라. 또 거기 앉은사람들 보니 설위도 허리[47] 앉았?고 민회는 예전부터 두어째는 앉았더라. 하룬 선화황제 신하 애박이를 염라대왕께 부려[48] "아무개는 나의 가장 가련히 여기는 사람이니, 한 해만 잡아오지 마소서" 청하였거늘 염라왕이 이르되 "이는 천자의 말씀이라. 거스르지 못하고 부득이 들을 것이니와, 한 해는 너무하니 한 달만 주겠다" 하거늘 애박이 다시 "한 해만 주소서" 사뢰거늘 염라왕이 대로[大怒]하여 이르되 "황제 비록 천자[天子]인들 사람 죽이며 살리며 하기는 내 권손[51]이 다 가졌거든 어찌 다시금 빌어 내게
3.2. 어숙권의 패관잡기 2권 [편집]
蔡懶齋壽 中廟初 著薛公瓚還魂傳 極怪異 末云 公瓚借人之身 淹留數月 能言己怨 及冥聞事甚詳 令一從所言及所書書之 不易一字者 欲其傳信耳
난재 채수가 중종 초에 <설공찬환혼전>을 지었는데, 그 내용이 매우 괴이하다. 말미에 이르기를, "설공찬이 남의 몸을 빌려 수 개월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원한과 명부의 일을 매우 상세히 말하였다. 하여금 말한 바와 쓴 바를 한결같이 좋아 그대로 쓰게 하고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것은, 그 일을 전하여 믿게 하고자 해서이다."라고 하였다.[54]
설공찬전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마지막 부분은 알 수 있게 되었다.
4. 기타 [편집]
[1] 朱全忠, 본명은 주온(朱溫)으로 당나라 마지막 황제 애제와 황실을 학살하고, 후양의 초대 황제가 되어 공포정치를 한 폭군으로 결국 아들에게 죽는다.[2] 이복규. (1997) ‘< 설공찬전 > 국문본의 발견 경위와 의의’. 고소설연구, 3(0), pp. 5-25.[3] 신하를 데려온 뒤 손을 삶으라고 하자 성화 황제가 행동하려는 곳에서 끊긴다.[4] 이로 인해 다른 책 안쪽에도 나누어서 필사했으나 소실 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5] 업동과 바뀜?[6] 업죵과 바뀜?[7] 업종과 바뀜?[8] 반복부호. 앞의 글자를 1번 반복한다.[ᄒᆞ니?] [ᄅᆞᆷ?] [11] 오타?[12] 그위실, 구우실, 구실[안잣?] [14] 이복규, 1997. 최고 한글표기소설 '설공찬전' 국문본의 해제와 원문. 사학연구,(53), pp.223-263.[15] 백방[16] 신령이나 귀신에게 빌어 재앙을 물리침[大怒] 17.1 17.2 크게 화나다. 대노[18] 惠容, 자비로운 얼굴[19] '외'로 본다면 한쪽으로[20] 舊醫, 수발[21] 그만두고 아니하다[유무] 22.1 22.2 원문은 유무(有無)[이승] 23.1 23.2 23.3 23.4 23.5 23.6 23.7 이승[24] 族親, 같은 성을 가진 친족[25] 詳考, 꼼꼼히 따져서 봄[27] '가ᄋᆞᆷ'이 넉넉하다로 쓰는 바 뒤에 알다가 붙으니 잘 아는 것으로 씀.[저승] 28.1 28.2 28.3 28.4 28.5 저승[31] 趐 나아갈 혈[33] 凶終, 흉한 몰골로 죽다[34] 忠信, 충성과 신의[36] 積不善, 착하지 않은 일을 계속 함[39] 怨,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43] 까지?[45] 盛하다, 성대하다.[46] 禮樂, 예법과 음악. 제례약의 그 예악이 맞다.[47] 가운데[48] 시키다. 시켜[天子] [51] 權孫, 권세있는 후손들?[52] 威儀, 엄숙한 태도나 차림세[53]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일으키다. 여기서는 말로 사건을 일으키다.[54] 소인호. (1998) ‘국사 인권환 (印權煥) 의암 이기서 (李起墅) 교수 화갑기념호 : 고전문학 한문학 ; < 설공찬전 > 재고’. 어문논집, 37(0), pp. 4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