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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해왕사
客海往事
형태
TV 드라마 기획 / 미확인 미방영 드라마
제작 국가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기획 시기
2005년경 ~ 2009년경
극본 완성
2006년 8월경
주요 제작 주체
푸젠성 룽옌시 문화·출판국
베이징 푸룬후이황문화전파유한공사
감독 계약
후메이
기획·제작자
장샤오위 / 장시
관련 작가
뤄구, 쑨궈량 등
예정 회차
30회 또는 34회
예정 장르
역사극, 객가 소재 드라마, 양안 관계 소재 드라마
주요 소재
명말청초 민서 정주부 객가 가문, 객가인의 대만 이주, 민대 객가 혈연관계, 사보 목판인쇄
주요 로스트 대상
실제 촬영 영상, 파일럿 영상, 예고편, 완성본, 방송본
현존 자료
기획 기사, 극본 완성 언급, 감독 계약 기사, 권리분쟁 기사, 관련 인물 이력
현재 상태
존재 여부 미확인
목차
1. 개요2. 기획 배경3. 내용과 구성4. 제작 준비5. 유실 또는 미확인 경위6. 수색 과정
6.1. 2005년경: 객가 소재 대형극 구상6.2. 2006년 8월: 극본 완성6.3. 2007년 2월: 극본研讨와 촬영 예정 보도6.4. 2007년 6월: 배우·주제가 관련 보도6.5. 2007년 9월: 후메이 감독 계약6.6. 2007년 10월: 로케이션과 캐스팅 단계6.7. 2007년 12월~2008년: 촬영 연기와 권리분쟁의 전조6.8. 2008년 9월: 유사 객가극 《滚滚血脉》의 등장6.9. 2009년 4월: 권리분쟁 보도6.10. 2011년 이후: 관련 인물 이력 속 잔존
7. 주요 가설8. 현재 상태9. 외부 링크


1. 개요 [편집]

《객해왕사》는 200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 기획된 객가 소재 TV 드라마이다. 원제는 《客海往事》이며, 공개 기사와 당시 커뮤니티 전재 자료에서는 `중국 최초로 민대 객가 혈연관계를 다루는 TV 연속극`, `객가 근원 영상극`, `사시적 심근 드라마` 등으로 소개되었다.[A]

이 문서에서 다루는 로스트 미디어의 본체는 `《객해왕사》라는 기획이 존재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촬영·완성·방영된 영상물이 있었는가이다.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는 극본 완성, 투자·입안, 감독 계약, 제작 지연, 권리분쟁 관련 기사뿐이며, 완성된 드라마 본편, 예고편, 파일럿 영상, 촬영 현장 영상은 확인되지 않았다.[A][B][C]

따라서 《객해왕사》는 `소실된 방영본`이라기보다, 완성 영상의 존재 여부가 불명확한 미방영·미실현 드라마 프로젝트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로스트 미디어 분류상으로는 `소실됨`보다는 `존재 여부 미확인`에 더 가깝다.

2. 기획 배경 [편집]

《객해왕사》는 민서 객가인의 역사와 대만 이주, 객가 문화의 공동 기억을 다루는 대형 역사극으로 기획되었다. 2007년 객가인 커뮤니티에 전재된 푸젠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민대 객가 인연을 반영하는 드라마로, 명·청 이후 민서 객가인들이 직접 대만으로 건너가거나, 메이저우·차오저우·후이저우 등지를 거쳐 다시 대만으로 이주한 역사를 서사의 바탕으로 삼았다.[A]

또한 이 기획은 롄청 사보의 목판인쇄 문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기사에서는 사보 목판인쇄가 남송 말기 기원해 명대 중후기 이후 흥성했고, 한때 강남을 독점하고 전국과 해외에까지 출판물을 유통한 문화 산업이었다고 소개하면서, 《객해왕사》가 이를 통해 객가인의 경독문화를 해석하려 했다고 설명했다.[A]

2006년 8월, 장샤오위는 자신의 블로그에 `30집 TV 드라마 《객해왕사》의 극본이 드디어 탈고했고, 룽옌의 두 번째 극본료도 회사 계좌에 들어왔으며, 며칠 뒤 국무원 대만판공실에 심사를 보내겠다`고 적었다.[B] 이 기록은 작품이 단순 구상 단계가 아니라, 적어도 극본 완성 및 심사 준비 단계까지 진행되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1차성 자료다.

3. 내용과 구성 [편집]

공개 자료에 따르면 《객해왕사》는 명말청초 푸젠 민서 정주부의 여러 객가 가문을 중심으로, 대만 이주와 경제 개척, 외래 침략에 대한 저항, 중화문화 전승을 다루려 했다.[A]

2007년 9월 전재된 TOM 기사에 따르면, 이야기는 명말청초 푸젠 민서 정주부의 몇몇 객가 가문이 대만으로 이주·발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애증과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었다.[A] 같은 기사에서 후메이는 이 작품이 30부작 드라마이며, 2천만 위안 이상 투자와 정예 제작진을 바탕으로 정교한 문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A]

한편 같은 게시물에 전재된 푸젠일보 기사에서는 이 작품이 34집 대작으로 소개되었다.[A] 따라서 회차 수는 자료에 따라 `30회`와 `34회`가 혼재한다. 이 차이는 기획 단계에서 회차가 조정되었거나, 매체별 보도 시점이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요 인물로는 남자 주인공 장원충, 류궈둥, 여자 주인공 장쉐롄 등이 언급된다. 당시 기사에서는 장쉐롄을 중심으로 객가 여성의 강인함과 객가 문화의 독자성을 보여 주려 했다고 설명했다.[A]

4. 제작 준비 [편집]

2007년 2월 전후 보도에서는 《객해왕사》가 이미 2년간 준비되었고, 극본이 완성되었으며, 춘절 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A] 이는 2006년 장샤오위 블로그의 극본 완성 기록과도 대체로 맞물린다.[B]

2007년 9월 15일, 베이징에서 《객해왕사》 감독 계약식이 열렸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작품은 푸젠성 룽옌시와 베이징 푸룬후이황문화전파유한공사가 공동 투자하고, 후메이가 감독 및 집행제작자를 맡는 것으로 발표되었다.[A] 기사에서는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정식 비준을 받았고, 국가광전총국에도 정식 입안되었으며, CCTV 영상부도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A]

2007년 10월 17일 시나 연예 보도는 후메이가 《객해왕사》의 로케이션을 위해 현장을 살피고 있으며, 극본을 먼저 확정한 뒤 배우를 정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D] 이 보도는 2007년 가을 시점에도 작품이 완성 촬영 단계보다는 로케이션·극본 확정·캐스팅 전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5. 유실 또는 미확인 경위 [편집]

현재 공개 자료만 보면 《객해왕사》는 실제 방영되지 않았고, 완성 영상물도 확인되지 않는다. 수색상 가장 중요한 단서는 2009년의 권리분쟁 보도다.

2009년 중도망 기사에 따르면, 2007년 9월 15일 룽옌시 문화·출판국과 베이징 푸룬후이황문화전파유한공사는 출자자로서 베이징 후메이예술창작중심과 《객해왕사》 촬영 계약을 맺었다.[C] 같은 보도는 2007년 12월 후메이 창작중심이 여러 이유로 이 작품의 촬영을 2008년 9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고 정리한다.[C]

그 뒤 2008년 5월 룽옌시 문화국은 푸룬회사에 변호사 서한을 보내, 푸룬회사가 1기 투자금 240만 위안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았고 50만 위안을 무단으로 빼냈다며 계약 해제를 요구했다.[C] 이후 푸룬회사는 룽옌시 문화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문화국이 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없으며 《객해왕사》의 저작권 또는 권리를 자신들이 가진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되었다.[C]

이 권리분쟁은 《객해왕사》가 실제 촬영·완성 단계로 가지 못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보인다. 다만 공개 자료만으로는 `촬영이 전혀 없었는지`, `일부 파일럿이나 홍보 영상만 찍혔는지`, `촬영분이 있었으나 폐기되었는지`를 확정할 수 없다.

6. 수색 과정 [편집]

6.1. 2005년경: 객가 소재 대형극 구상 [편집]

후대 전재 자료에 따르면 《객해왕사》는 2007년 초 기준으로 이미 2년간 준비된 프로젝트였다.[A] 따라서 기획의 출발은 대략 2005년경으로 추정된다. 다만 공개 기사에서 이 시기 실체는 주로 극본 기획과 전문가 논의에 머문다.

중국작가협회 인물 페이지는 쑨궈량의 이력에서 `30집 TV 연속극 《객해왕사》`를 그의 수상·작품 경력 중 하나로 언급한다.[E] 이는 이 프로젝트가 지역 문예계와 작가 경력 안에서도 일정하게 인정된 기획이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6.2. 2006년 8월: 극본 완성 [편집]

2006년 8월 2일 장샤오위는 자신의 시나 블로그에서 `30집 TV 드라마 《객해왕사》의 극본이 드디어 탈고했다`고 적었다.[B] 그는 룽옌 측의 두 번째 극본료도 회사 계좌에 들어왔고, 며칠 뒤 국무원 대만판공실에 보내 심사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B]

이 기록은 수색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완성 영상은 없지만, 적어도 극본은 실재했고, 제작사와 지방 정부 사이에 비용 지급까지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6.3. 2007년 2월: 극본研讨와 촬영 예정 보도 [편집]

2007년 2월 전후 푸젠일보 전재 기사는 《객해왕사》가 춘절 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A] 기사에서는 국무원 대만판공실, 푸젠성 대만판공실, 작가·학자·언론계 인사들이 극본을 논의했고, 문화적·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고 적었다.[A]

이 단계에서 《객해왕사》는 단순 민간 기획이 아니라, 양안 객가 문화와 지역 문화산업을 결합한 공식성 있는 프로젝트로 홍보되었다.[A]

6.4. 2007년 6월: 배우·주제가 관련 보도 [편집]

2007년 6월 보도에서는 싱가포르 출신 가수 투쯔닝이 《객해왕사》의 여주인공 장쉐롄 역을 맡는다는 내용과, 그녀의 신곡 〈향월〉이 이 드라마의 주제가로 검토된다는 내용이 전해졌다.[F][G]

다만 후속 자료를 보면 2007년 9~10월에도 후메이가 `먼저 극본을 정하고 배우를 정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어, 6월의 캐스팅·주제가 보도가 실제 확정 캐스팅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D] 따라서 이 대목은 `캐스팅 보도 또는 홍보 단계의 정보`로 적는 것이 안전하다.

6.5. 2007년 9월: 후메이 감독 계약 [편집]

2007년 9월 15일 베이징에서 후메이 감독 계약식이 열렸다. 보도에 따르면 룽옌시와 베이징 푸룬후이황문화전파유한공사가 공동 출자하고, 후메이가 감독 및 집행제작자를 맡을 예정이었다.[A]

이 보도는 《객해왕사》가 후메이의 신작으로 크게 보도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후메이는 `홍루몽중인` 선발과 관련된 논란 속에서 새판 《홍루몽》과 《객해왕사》를 동시에 언급했고, 이 때문에 《객해왕사》는 당시 중국 연예 뉴스에서 후메이의 행보와 함께 자주 등장했다.[H]

6.6. 2007년 10월: 로케이션과 캐스팅 단계 [편집]

2007년 10월 시나 연예는 후메이가 《객해왕사》를 위해 현장을 살피고 있으며, 이 드라마는 먼저 극본을 확정하고 배우를 정하겠다고 보도했다.[D] 이 때문에 실제 촬영은 2007년 가을에도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6.7. 2007년 12월~2008년: 촬영 연기와 권리분쟁의 전조 [편집]

2009년 보도에 따르면, 2007년 12월 후메이 창작중심은 《객해왕사》를 여러 이유로 2008년 9월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C] 이후 2008년 5월 룽옌시 문화국은 푸룬회사에 투자금 문제와 자금 인출 문제를 지적하는 변호사 서한을 보냈다.[C]

이 단계부터 프로젝트가 제작 지연과 출자 갈등에 빠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6.8. 2008년 9월: 유사 객가극 《滚滚血脉》의 등장 [편집]

2008년 9월에는 다른 객가 소재 드라마 《滚滚血脉》가 `글로벌 객가 제1극`이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촬영 완료를 알렸다.[I] 이 때문에 후대 수색자들 사이에서는 《객해왕사》가 다른 객가 소재 드라마와 혼동되었거나, 유사 프로젝트로 대체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공개 자료에서 《객해왕사》와 《滚滚血脉》가 동일 프로젝트라는 증거는 없다. 감독, 제작 정보, 줄거리 축이 다르므로 두 작품은 별개 기획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A][I]

6.9. 2009년 4월: 권리분쟁 보도 [편집]

2009년 4월 중도망은 `명감독에게 객가 이야기를 찍게 하려다 두 출자자가 권리를 다툰다`는 취지의 기사로 《객해왕사》 분쟁을 보도했다.[C] 해당 보도는 룽옌시 문화국과 푸룬회사 사이의 계약 해제, 투자금 문제, 저작권 주장 등을 다뤘다.[C]

이 보도 이후 《객해왕사》의 촬영 진행, 완성, 방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자료는 현재까지 찾기 어렵다. 따라서 수색사상 2009년 권리분쟁은 사실상 프로젝트가 멈춘 결정적 지점으로 볼 수 있다.

6.10. 2011년 이후: 관련 인물 이력 속 잔존 [편집]

2011년 베이징시 대중음악협회 인물 페이지는 장샤오위의 이력에 `30집 TV 드라마 《객해왕사》(감독 후메이)`를 기획·각본 작품으로 적고 있다.[J] 2016년 중국작가망의 쑨궈량 이력에도 `30집 TV 연속극 《객해왕사》`가 포함되어 있다.[E]

이는 작품이 관계자 이력 안에서는 계속 `작품/기획`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력 기재만으로 실제 촬영본이나 방영본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7. 주요 가설 [편집]

  • 실제 촬영 전 무산설
    현재 가장 안전한 가설이다. 2006년 극본 완성, 2007년 감독 계약, 2007년 로케이션·캐스팅 논의, 2007년 말 연기, 2008~2009년 권리분쟁까지는 확인되지만, 촬영 완료·방영·예고편 공개 자료가 없다.[B][D][C] 따라서 본편 영상이 아예 제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일부 파일럿 또는 홍보 영상 존재설
    2007년 당시 투자가 2천만 위안 이상으로 발표되었고, 감독 계약식과 캐스팅·주제가 보도까지 있었기 때문에, 피칭용 영상이나 홍보용 테스트 영상이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A][F] 그러나 현재 공개 자료로는 파일럿 영상, 예고편, 촬영 현장 영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 투자·권리분쟁으로 중단설
    2009년 기사에 따르면 룽옌시 문화국은 푸룬회사가 투자금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았고 일부 자금을 무단 인출했다고 주장했으며, 푸룬회사는 계약 해제 권한과 저작권을 두고 소송을 제기했다.[C] 따라서 제작 지연과 무산의 직접 원인을 출자·저작권 분쟁으로 보는 설명이 가장 구체적이다.
  • 《滚滚血脉》와 혼동설
    같은 시기 `객가 제1극`을 표방한 《滚滚血脉》가 촬영 완료되었기 때문에, 후대 검색에서 두 작품이 혼동될 가능성이 있다.[I] 다만 현재 자료상 두 작품은 별개의 기획으로 보는 것이 맞다.[A][I]
  • 자료가 관계자·기관 내부에만 남아 있을 가능성
    극본은 완성되어 심사 단계까지 갔고, 지방정부·제작사·감독 측 계약도 이루어졌으므로, 극본 전집, 기획서, 계약서, 캐릭터 설정, 로케이션 자료, 음악 데모 등은 관계자나 기관 내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B][A][C]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공개 아카이브로 확인되지 않는다.

8. 현재 상태 [편집]

현재 《객해왕사》는 `완성된 드라마가 소실된 사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극본 완성, 심사 준비, 감독 계약, 입안, 투자 계획, 권리분쟁은 확인되지만, 실제 촬영 완료와 방송의 흔적이 없다.[B][A][C]

따라서 로스트 미디어 위키 분류로는 존재 여부 미확인이 가장 적절하다. 현존하는 것은 기획·기사·극본 완성 언급·관계자 이력이며, 로스트 대상으로 추정되는 영상물은 실제 제작 여부부터 불명확하다.

9. 외부 링크 [편집]


[A] 1.1 1.2 1.3 1.4 1.5 1.6 1.7 1.8 1.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客海往事, 客家风情·客家人·客家网, 2007-09-17.[B] 3.1 3.2 3.3 3.4 3.5 3.6 3.7 3.8 八月的镜像, 江小鱼新浪博客, 2006-08-02.[C] 4.1 4.2 4.3 4.4 4.5 4.6 4.7 4.8 4.9 4.10 4.11 4.12 4.13 请胡玫拍“客家故事” 两东家争版权, 中图网, 2009-04-30.[D] 17.1 17.2 17.3 17.4 胡玫为《客海往事》选景称要先定剧本再选角, 新浪娱乐, 2007-10-17.[E] 23.1 23.2 孙国亮, 中国作家网, 2016-06-27.[F] 29.1 29.2 《向月》被定《客海往事》 涂紫凝音乐表演双收, 搜狐音乐, 2007-06-13.[G] 《向月》成电视剧主题曲涂紫凝音乐表演双丰收, 搜狐娱乐, 2007-06-14.[H] 胡玫翻脸李少红接班新版《红楼梦》没准要泡汤, 凤凰娱乐, 2007-09-18.[I] 37.1 37.2 37.3 37.4 全球客家第一剧《滚滚血脉》杀青, 搜狐娱乐, 2008-09-06.[J] 江小鱼, 北京市大众音乐协会,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