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황력 開皇曆 / 開皇錄 | |
저자 | 미상 |
제작 국가 | |
제작 시기 | 금관가야 멸망? ~ 남북국 시대? ~ 고려 초? |
형태 | 문헌 (역사서) |
현재 상태 | 부분적으로 발견됨 |
1. 개요 [편집]
금관가야의 기록을 적은 가야의 역사책. 開皇曆이라 쓰고 개황록(開皇錄)이라고도 불리며 원본은 현재 로스트 미디어다.
제목의 개황(開皇)에 대해서는 수나라 문제의 연호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제목의 개황(開皇)에 대해서는 수나라 문제의 연호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2. 남은 기록 [편집]
고려 시대 일연이 펴낸《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일부분이 존재한다.
首露王
壬寅二月卵生. 是月即位, 理一百五十八年. 因金卵而生, 故姓金氏. 開皇暦載.
수로왕(首露王)
임인(壬寅)년 2월에 알에서 태어났다. 이 달에 즉위하여 158년을 다스렸다. 그로 인하여 금알에서 태어났으므로, 까닭에 성이 김(金)씨이다. 『개황력(開皇曆)』에 실려 있다.
開皇暦云 "姓金氏, 盖國世祖從金卵而生, 故以金爲姓厼."
≪개황력(開皇曆)≫에는 "성(姓)은 김씨(金氏)이니 대개 시조(始祖)가 금란(金卵)에서 난 까닭에 김을 성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開皇録云, “梁中大通四年壬子降于新羅.”
≪개황록(開皇錄)≫에 보면, "양(梁)나라 무제(武帝) 중대통(中大通) 4년 임자(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3. 해설서의 발견 [편집]
경남양산문화원에서 취서사지라는 책을 만드는 도중 1960년대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이 책이 실존했었고, 그 복사본이 부산 지역 가락종씨 종친 일부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추적했다.
하지만 이미 원본과 복사본은 소실되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설서는 밀양에 살고 있는 김남철 씨가 가지고 있어 그 전문을 전달받아 취서사지 부록 3에 실리게 되었다. 보러가기
하지만 이미 원본과 복사본은 소실되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설서는 밀양에 살고 있는 김남철 씨가 가지고 있어 그 전문을 전달받아 취서사지 부록 3에 실리게 되었다. 보러가기
4. 기타 [편집]
- 개황력의 제목인 '개황(開皇)'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집필되었는지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 1. 수나라 연호(진평왕 시대)설
'개황(開皇)'이 581년~600년에 중국 수나라 문제가 썼던 연호라는 점에서 나온 가설이다. 이는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함이 기록되어 금관가야 멸망 후인 신라 진평왕 시대로 본다. (유우창. 2021, '『가락국기』 편찬과 역사적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36, 243-276.) - 2. 문무왕 시기 설
- 3. 신라 말 ~ 고려 초 설
한자 '開皇'을 "황국을 열었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가설이다. 이 '皇' 이란 글자를 표기하는 것이 가능한 시기인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집필되었다고 본다. (남재우. (2005). 가야의 建國神話와 祭儀. 한국고대사연구, 39, 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