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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황력(r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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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황력
開皇曆 / 開皇錄
저자
미상
제작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가야 또는 신라 (추정)
제작 시기
미상 (6세기 ~ 10세기 경 추정)
형태
문헌 (역사서)
현재 상태
소실됨
목차
1. 개요2. 남은 기록3. 해설서의 발견


1. 개요 [편집]

금관가야의 기록을 적은 가야의 역사책. 開皇曆이라 쓰고 개황록(開皇錄)이라고도 불린다. 원본은 로스트 미디어이다.

제목의 개황(開皇)에 대해서는 수나라 문제의 연호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문헌 내에서는 ''이라는 명칭과 혼용되어 기록되어 있으며,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쓰인,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계 사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책으로 꼽힌다.

2. 남은 기록 [편집]

고려 시대 일연이 펴낸《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에 인용된 일부분이 존재한다.

시조의 탄생 설화 (《삼국유사》 제2권 기이 가락국기 거등왕 편)

≪개황력(開皇曆)≫에는 “성(姓)은 김씨(金氏)이니 대개 시조(始祖)가 금란(金卵)에서 난 까닭에 김을 성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開皇暦云 “姓金氏, 盖國世祖從金卵而生, 故以金爲姓厼.”)

금관가야의 멸망 시기 (《삼국유사》 제2권 기이 가락국기 구해왕 편)

≪개황록(開皇錄)≫에 보면, “양(梁)나라 무제(武帝) 중대통(中大通) 4년 임자(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開皇録云, “梁中大通四年壬子降于新羅.”)

3. 해설서의 발견 [편집]

경남양산문화원에서 취서사지라는 책을 만드는 도중 1960년대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이 책이 실존했었고, 그 복사본이 부산 지역 가락종씨 종친 일부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추적했다.

하지만 이미 원본과 복사본은 소실되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설서는 밀양에 살고 있는 김남철 씨가 가지고 있어 그 전문을 전달받아 취서사지 부록 3에 실리게 되었다.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