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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1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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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개황력(開皇曆)'''은 금관가야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사서이다. 지금은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지 않으며, 고려 시대 일연이 펴낸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에 인용된 부분만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로스트 미디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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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금관가야의 기록을 적은 가야의 역사책. 開皇曆이라 쓰고 개황록(開皇錄)이라고도 불린다. 원본은 로스트 미디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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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 문헌 내에서는 '개황록(開皇錄)'이라는 명칭과 혼용되어 기록되어 있으며,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쓰인,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계 사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책으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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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제목의 개황(開皇)에 대해서는 수나라 문제의 연호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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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문헌 내에서는 ''이라는 명칭과 혼용되어 기록되어 있으며,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쓰인,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계 사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책으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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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8 | == 남은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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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개황력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인용된 다음의 두 문장이 전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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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고려 시대 일연이 펴낸《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에 인용된 일부분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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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21 | '''시조의 탄생 설화''' (《삼국유사》 제2권 기이 가락국기 거등왕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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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7 | ≪개황록(開皇錄)≫에 보면, “양(梁)나라 무제(武帝) 중대통(中大通) 4년 임자(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開皇録云, “梁中大通四年壬子降于新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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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 이 기록들을 통해 개황력은 조상들을 매우 높이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설화적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보다 앞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개황력을 인용한 흔적이 없는 이유도 이러한 설화적 성격이 유교적 관점(괴력난신을 배격함)에서 터무니없게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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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 사본 수색 및 진위 여부 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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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개황력 원본은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8년 양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취서사지』라는 책의 부록에 '개황력 해설서'가 수록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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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해설서의 발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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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경남양산문화원에서 취서사지라는 책을 만드는 도중 1960년대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이 책이 실존했었고, 그 복사본이 부산 지역 가락종씨 종친 일부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추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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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당시 양산문화원이 『취서사지』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까지 전라도 지역에 개황력의 사본이 남아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입수하려 했으나, 사본 자체는 이미 실전된 뒤였다고 한다. 대신 경상남도 밀양에 거주하는 김 모 씨가 해당 사본의 해설서만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그 내용을 책에 수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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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그러나 이 해설서는 원본과의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실 여부는 불명이며, 학계 및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자료도 있다" 정도로만 참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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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하지만 이미 원본과 복사본은 소실되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설서는 밀양에 살고 있는 김남철 씨가 가지고 있어 그 전문을 전달받아 취서사지 부록 3에 실리게 되었다. [[https://www.nculture.org/lib/libraryDetail.do?contentId=41324|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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