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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경남양산문화원에서 취서사지라는 책을 만드는 도중 1960년대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이 책이 실존했었고, 그 복사본이 부산 지역 가락종씨 종친 일부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추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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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31 | 하지만 이미 원본과 복사본은 소실되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해설서는 밀양에 살고 있는 김남철 씨가 가지고 있어 그 전문을 전달받아 취서사지 부록 3에 실리게 되었다. [[https://www.nculture.org/lib/libraryDetail.do?contentId=41324|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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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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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개황력의 제목인 '개황(開皇)'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집필되었는지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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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 1. 수나라 연호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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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개황(開皇)'이 581년~600년에 중국 수나라에서 썼던 연호라는 점에 착안한 가설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금관가야 멸망과 신라 편입 이후인 신라 진평왕 시대쯤에 쓰인 책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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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2. 신라시기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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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한자 '開皇'을 특정 연호가 아니라 그대로 "황국을 열었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견해이다. 신라 사회에서 왕가도 아닌 김해 김씨들이 자기들 옛날 선조 이야기에 이런 거창한 표현을 썼다는 점에서 착안한 주보돈 학자의 해석이다. 금관국 후손들의 위상이 가장 높아진 시점, 즉 김유신이 전쟁영웅에 오른 시점부터 삼국통일의 열기가 아직 가시기 전인 7세기 중후반에 쓰였다는 주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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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또한 신라 중앙의 통제력이 완전히 무너진 나말여초(후삼국시대)의 혼란한 상황에서, 신김씨 후손들이 과거 자신들이 왕손이었음을 강력하게 강조하려 썼다는 가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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