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4 | ||
|---|---|---|
| r1 (새 문서) | 1 | [[분류:형태/영화]][[분류:상태/소실됨]][[분류:국가/대한민국]] |
| r4 | 2 | ||<-2><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gray><bgcolor=gray><table bgcolor=white,#1c1d1f> {{{#ffffff '''{{{+2 아리랑 (1926년 영화)}}}'''[br]'''아리랑'''}}} || |
| r1 (새 문서) | 3 | ||<width=30%><colbgcolor=gray><colcolor=#ffffff> '''감독''' ||나운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033|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
| 4 | || '''각본·각색''' ||나운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
| 5 | || '''제작사''' ||조선키네마프로덕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033|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 |
| 6 | || '''개봉일''' ||1926년 10월 1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 r3 | 7 | || '''러닝타임''' ||약 135분(9릴)[*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033|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
| r1 (새 문서) | 8 | || '''형태''' ||무성영화 || |
| 9 | || '''장르''' ||드라마, 민족영화 || | |
| 10 | || '''출연''' ||나운규, 신일선, 주인규, 남궁운 등[*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033|아리랑]],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br][[https://e-gonghun.mpva.go.kr/user/IndepCrusaderDetail.do?goTocode=20003&mngNo=7471|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br][[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307|신일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
| 11 | || '''관련 작품''' ||[[아리랑 후편]], [[아리랑 3편]][*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 12 | || '''현재 상태''' ||[include(틀:소실됨)] || | |
| 13 | [목차] | |
| 14 | [clearfix] | |
| 15 | ||
| 16 | == 개요 == | |
| 17 |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의 무성영화로,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의 제2회 작품이자 나운규의 감독 데뷔작이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18 |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3·1운동의 충격과 식민지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한국 초기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e-gonghun.mpva.go.kr/user/IndepCrusaderDetail.do?goTocode=20003&mngNo=7471|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 | |
| 19 | ||
| 20 | 이 문서에서 다루는 로스트 미디어의 본체는 '''영화 필름 원본 및 상영용 프린트'''이다. 작품의 존재 자체는 확실하고, 시나리오·광고·평문·촬영현장 사진·스틸 사진 같은 비필름 자료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나, 정작 본편 필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br][[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br][[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21 | ||
| 22 | 즉 아리랑은 완전히 실체가 사라진 이름뿐인 전설이 아니라, '''텍스트와 사진 자료는 상당수 남아 있으나 영상 필름만 소실된 대표적 한국 영화 로스트 미디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br][[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23 | ||
| 24 | == 작품 개요와 역사적 의의 == | |
| 2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리랑》은 1919년 이후 형성된 초창기 조선영화가 외국영화 번안과 신파물에 머물러 있던 상황에서 등장해, 항일 민족정신과 당대 사회현실을 전면에 내세운 혁명적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 26 | 한국영상자료원도 2016년 특별전 소개문에서, 이 영화가 개봉 당시 대중의 엄청난 호응과 사랑을 받았고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꼭 봐야 하는 민족영화였다고 정리한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27 | ||
| 28 | 영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3·1운동의 충격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 무너진 청년 영진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여동생을 노리는 친일파 하수인을 낫으로 죽이고 체포되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e-gonghun.mpva.go.kr/user/IndepCrusaderDetail.do?goTocode=20003&mngNo=7471|나운규]], 공훈전자사료관.] | |
| 29 | 후대 연구와 회고에서는 이 서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억눌린 감정과 항일 정서를 대중적으로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br][[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gaunggo/2021/04/12/20210412030002|[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서울신문, 2021-04-12.] | |
| 30 | ||
| 31 | 또한 이 영화의 성공은 후속작 제작으로 이어졌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30년 이구영 감독의 《아리랑 후편》, 193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3편》이 제작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이들 역시 현재 필름을 볼 수 없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32 | ||
| 33 | == 현존 자료 == | |
| 34 | 아리랑이 완전한 무(無)의 상태는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은 비필름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
| 35 | ||
| 36 | '''시나리오 및 텍스트 자료''' | |
| 37 | ||
| 38 | 한국영상자료원은 2016년 특별전 소개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시나리오와 후대에 이르러 재창조된 몇 편의 다른 <아리랑>들을 통해 그 내용과 의의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적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39 | 즉, 필름은 없어도 텍스트 계열 자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 |
| 40 | ||
| 41 | '''광고와 신문 기록''' | |
| 42 | ||
| 43 | 서울신문 2021년 칼럼은 1926년 《아리랑》 광고와 주제가 전승 문제를 다루며, 당시 신문 광고를 통해 작품의 홍보 양상과 관객 반응을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gaunggo/2021/04/12/20210412030002|[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서울신문, 2021-04-12.] | |
| 44 |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 등 당대 인쇄물은 현재도 작품의 개봉과 장면 소개를 재구성하는 주요 사료로 쓰인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45 | ||
| 46 | '''촬영현장 기념사진 및 스틸 사진''' | |
| 47 | ||
| 48 | 서울En의 2019년 기사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제공의 촬영현장 기념사진이 실려 있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49 | 또한 2025년 4월 무렵 KMDb 소장품 목록에는 #1920년대 #아리랑 #장면 사진으로 정리된 스틸이 등재되어 있다.[* [[https://www.kmdb.or.kr/collectionlist/detailList?colId=&sort2=%EC%95%84%EB%A6%AC%EB%9E%91|KMDb 컬렉션 목록 - 아리랑]], KMDb, 검색 결과 스니펫.] | |
| 50 | ||
| 51 | '''2025년 새로 발굴된 원본 스틸 사진''' | |
| 52 | ||
| 53 |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 보도는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장면 사진의 원본이 처음 발굴되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그전까지는 원본이 아닌 스틸 사진 10종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54 |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6월호 《삼천리》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한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55 | ||
| 56 | == 현존 자료와 혼동된 자료 == | |
| 57 | 이 작품 수색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유명한 사진들 가운데 일부가 1926년 원작 1편의 사진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 |
| 58 | 2019년 뉴스톱 기사와 이를 보존한 아카이브센터 요약은, 그간 교과서와 각종 출판물에서 널리 쓰인 가장 유명한 <아리랑> 스틸 사진 가운데 하나가 사실 1926년 영화 1편의 사진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br][[https://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
| 59 | 즉, 아리랑 수색은 필름만 찾는 문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진과 인쇄 자료 가운데 무엇이 진짜 1926년 1편에 속하는지 가려내는 문제'''까지 함께 포함한다.[*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br][[https://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
| 60 | ||
| 61 | == 유실 경위 == | |
| 62 | 한국영상자료원 2024년 웹진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필름이 유실된 무성영화 <아리랑>이라고 적고 있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63 | 다만 후대 설명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필름 소실 원인을 단일 사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기의 손실이 중첩된 결과로 본다. | |
| 64 | ||
| 65 | 서울En의 2019년 글은 당시 필름이 인화성이 강한 질산염 필름이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보관하지 않았다면 생존 확률 자체가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66 | 2025년 조선일보 보도는 김연갑의 설명을 인용해, 일제 말기 군수품 회수와 해방 이후 은 추출을 위한 소각 과정 속에서 필름이 사라졌다고 적었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67 | 즉, 현재로서는 질산염 필름의 물리적 취약성, 전시기·해방기 재활용, 한국전쟁기의 혼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br][[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br][[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68 | ||
| 69 | 또 중요한 점은 아리랑의 필름이 1926년 개봉 직후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En과 월간조선 자료는 1952년 9월 대구 만경관에서 1주일간 상영된 것이 마지막 상영 기록으로 자주 인용된다고 적는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br][[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70 | 즉 적어도 1952년까지는 상영 가능한 프린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완전히 끊긴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br][[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71 | ||
| 72 | == 수색 과정 == | |
| 73 | === 1926년~1952년: 상영의 시대와 마지막 기록 === | |
| 74 |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했고, 한국영화사에서 전례 없는 반응을 일으켰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br][[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75 | 후대 자료들은 해방 이후에도 서울과 지방에서 여러 차례 재상영되었고, 1952년 대구 만경관 상영이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정리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br][[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76 | 즉 수색사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사실은 이 영화가 장기간 실제 상영되었으며, 한때는 분명 복수의 상영 프린트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77 | ||
| 78 | === 1974년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의 장기 추적 시작 === | |
| 79 | 한국영상자료원은 2024년 웹진에서 1974년 설립 후 <아리랑>의 소재를 추적해 왔다고 적고 있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80 | 즉, 아리랑 필름 수색은 최근 인터넷 로스트 미디어 붐보다 훨씬 오래된, 한국 영화 아카이브의 장기 과제였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81 | ||
| 82 | === 1993년~2004년: 일본인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 소장설 확산 === | |
| 83 | 월간조선은 〈아리랑〉 필름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9월경이라고 적고, 이후 일본인 필름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고 설명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84 | 씨네21의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기사도 1994년부터 방송 3사와 여러 민족주의 단체들이 아리랑을 찾아 아베를 찾았다고 전한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 | |
| 85 | ||
| 86 | 아베는 자신의 소장목록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항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필름 실물 공개는 거부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br][[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 | |
| 87 | 이 시기 수색의 가장 큰 특징은, 필름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아주 구체적인 대상 하나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br][[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88 | ||
| 89 | === 2005년: 아베 사망과 일본 조사 착수 === | |
| 90 | 2005년 2월 아베가 상속인 없이 사망하자, 한국 영화계와 수집가들은 그의 컬렉션에서 아리랑을 찾을 수 있을지 큰 기대를 걸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 | |
| 91 | 씨네21 보도에 따르면 아베의 소장 필름은 일본 문화청 소유로 넘어갔고,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가 조사를 맡게 되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 | |
| 92 | ||
| 93 | 이때만 해도 원본 필름 발견 임박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씨네21은 당시 기사 제목 자체를 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라고 뽑았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 | |
| 94 | 즉 수색사에서 2005년은 가장 기대감이 높았던 시기였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 | |
| 95 | ||
| 96 | === 2005년~2010년: 아베 컬렉션 실사와 실패 === | |
| 97 |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한국영상자료원 2024년 웹진은 아베 사후 일본문화청 협조 아래 총 4회의 현지 조사를 진행했고, 일본국립필름센터와 함께 2,400여 편을 검토했지만 아리랑의 흔적은 없었다고 명시한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98 | 동아일보 2015년 기사 검색 결과와 월간조선 2016년 기사도, 2010년 8월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 소장 필름을 확인했지만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고 정리한다.[* [[https://www.donga.com/news/Entertainment/article/all/20150722/72634951/4|[스타 그때 이런 일이] 1926년 개봉 나운규의 아리랑, 일본인 수집가 품에서 발견될까]], 동아일보, 2015-07-22.[br][[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99 | ||
| 100 | 씨네21의 X-파일 기사에서는 영상자료원 쪽이 당시에도 아베가 완본을 갖고 있을 확률은 10% 이하로 본다고 적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 | |
| 101 | 즉, 1990년대부터 가장 강력했던 아베 소장설은 2005~2010년 조사 과정을 거치며 크게 약화되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br][[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102 | ||
| 103 | === 2016년: 90주년 특별전과 필름 없이 기념하는 영화라는 자각 === | |
| 104 |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은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었지만, 정작 1926년 원작을 틀 수는 없었다. 소개문은 애석하게도 후대의 우리는 이 ‘아리랑’들을 볼 수가 없다고 적고, 대신 나운규의 삶과 리메이크 작품들을 상영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105 | 이 특별전은 아리랑이 여전히 한국영화사의 중심 상징인데도, 본편이 없는 채로 기념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106 | ||
| 107 | === 2019년: 자료 재검토와 가설의 재편 === | |
| 108 | 2019년에는 수색의 방향이 필름 그 자체에서 주변 자료의 재검증으로 넓어졌다. | |
| 109 | 서울En에 실린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연구원의 글은, 일본 소장설은 사실상 부정되었고 북한 소장설도 가능성이 낮다며, 미국 NARA나 의회도서관에 제목이 사라진 채 남은 필름 롤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110 | ||
| 111 | 같은 해 뉴스톱은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라는 기사로, 그간 널리 통용된 스틸 자료 가운데 하나를 정정했다.[*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br][[https://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
| 112 | 이 일은 아리랑 수색이 단순히 필름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남아 있는 정지 자료의 진위를 다시 검증하는 단계로 들어갔음을 보여 준다.[*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 | |
| 113 | ||
| 114 | ===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의 공식 회고 === | |
| 115 |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 웹진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은 아리랑을 대표적 유실영화 사례로 다시 정리했다. 이 글은 1974년 설립 후 추적, 아베 소장설, 북한과 공동 발굴위원회, 2005년 이후 4차 현지조사, 2400여 편 검토 실패를 한 문단으로 요약한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116 | 이 정리는 당시까지의 공식 수색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기관 문서로 자주 인용된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117 | ||
| 118 | ===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 === | |
| 119 |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는 아리랑의 원본 스틸 사진이 처음 발굴되었다고 보도했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20 | 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의 원본이며, 당시 인쇄 기술의 한계로 화질이 나빴던 이미지보다 더 선명한 원형 자료였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21 | 같은 기사에서는 1941년 《삼천리》 6월호에서 복사본 스틸 사진 한 장도 새로 찾아냈다고 전한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22 | ||
| 123 | 이 발굴은 필름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아리랑 수색사에서 매우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유는 첫째, 1926년 원작의 장면을 더 정확히 복원할 수 있는 고화질 시각 자료가 늘어났고, 둘째, 필름은 없어도 원본 사진 자료는 어딘가에서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24 | ||
| 125 | == 주요 가설 == | |
| 126 | ||
| 127 | '''한국전쟁기 소실설''' | |
| 128 | ||
| 129 |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명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필름이 유실된 무성영화라고 정리한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130 | 다만 이것은 큰 틀의 설명일 뿐, 어떤 프린트가 어느 시점에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 |
| 131 | ||
| 132 | '''일제 말 군수품 회수·해방 후 은 추출 소각설''' | |
| 133 | ||
| 134 | 2025년 조선일보 보도에서 김연갑은 필름이 일제 말기 군수품으로 수거되고, 해방 이후 은 추출을 위해 소각되는 와중에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35 | 후대 수색에서는 이 설명이 전시기와 전후 재활용 과정에서 초기 질산염 필름이 대거 사라졌다는 일반론과 결합해 자주 인용된다. | |
| 136 | ||
| 137 | '''아베 요시시게 소장설''' | |
| 138 | ||
| 139 |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강력했던 가설이다. 씨네21 2005년 기사와 한국영상자료원 웹진은 아베의 소장목록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씨네21, 2005-02-12.[br][[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 |
| 140 | 그러나 2005년 이후 일본 문화청 및 일본국립필름센터 조사에서 한국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으면서 현재는 크게 약화되었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br][[https://www.donga.com/news/Entertainment/article/all/20150722/72634951/4|[스타 그때 이런 일이] 1926년 개봉 나운규의 아리랑, 일본인 수집가 품에서 발견될까]], 동아일보, 2015-07-22.] | |
| 141 | ||
| 142 | '''아베의 제2 보관처/제2 관리자설''' | |
| 143 | ||
| 144 | 월간조선은 김연갑의 말을 인용해, 아베가 오사카 근처 섬들에 필름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 다른 사람이 관리하는 필름창고를 언급한 정황을 소개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월간조선, 2016-10.] | |
| 145 | 즉 아베 집안에서 안 나왔다고 끝난 게 아니라, 다른 장소에 분산 보관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남기는 설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
| 146 | ||
| 147 | '''북한 국가영화문헌고 소장설''' | |
| 148 | ||
| 149 | 한국전쟁 이후 또는 김정일 시기 북한이 해외 영화 필름을 대량 수집했다는 점 때문에 오래전부터 나온 가설이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150 | 그러나 정종화 연구원은 북한이 정말 가지고 있었다면 숨겨만 두지 않고 어떻게든 활용했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151 | ||
| 152 | '''중국 또는 러시아 상영본 생존설''' | |
| 153 | ||
| 154 | 씨네21 2005년 기사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은 아베 컬렉션과 별개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아리랑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상영 기록 때문에 중국 쪽 확률을 더 높게 본다는 설명이 붙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씨네21, 2005-03-29.] | |
| 155 | 이 설은 지금도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구체적 성과가 나온 적은 없다. | |
| 156 | ||
| 157 | '''미국 NARA/LOC 제목 없는 롤설''' | |
| 158 | ||
| 159 | 2019년 서울En 기고문은, 아리랑이 해방 전 일본에서도 상영되었고 전후 일본이 GHQ 점령기를 거쳤기 때문에, 미군이 노획한 필름 가운데 제목과 크레디트가 사라진 무명 롤 형태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이나 의회도서관(LOC)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En, 2019-03-25.] | |
| 160 | 이것은 현재 가장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으면서도 현실적인 해외 소재 가설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 |
| 161 | ||
| 162 | '''유명한 스틸사진 오인설''' | |
| 163 | ||
| 164 | 필름의 소재와는 별개지만, 수색사에서 중요한 보조 가설이다. 2019년 뉴스톱은 그간 교과서 등에 널리 쓰인 사진 가운데 하나가 1926년 1편 사진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05-24.] | |
| 165 | 이 때문에 남아 있는 시각 자료를 토대로 본편을 재구성할 때도 자료 비판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https://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기사]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
| 166 | ||
| 167 | == 현황 == | |
| 168 | 2026년 현재, 나운규의 1926년 영화 '''《아리랑》''' 본편 필름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br][[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 | |
| 169 | 따라서 로스트 미디어 분류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발견됨이 아니라 소실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 광고, 기사, 촬영현장 사진, 스틸 사진 같은 주변 자료이기 때문이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br][[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70 | ||
| 171 | 다만 아리랑의 수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원본 스틸 사진 발굴이 보여 주듯이, 필름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실체를 더 잘 복원할 수 있는 1차 자료는 아직도 개인 소장품이나 잡지, 아카이브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 [[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72 | 즉, 이 작품은 필름 발굴이라는 최종 목표에서는 아직 미제이지만, 주변 자료 복원 차원에서는 지금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장기 수색 대상이다.[*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br][[https://v.daum.net/v/8KQZfYKGt1?f=p|[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다음, 2025-07-25.] | |
| 173 | ||
| 174 | == 외부 링크 == | |
| 175 | ||
| 176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아리랑]] | |
| 177 | ||
| 178 |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033|KMDb - 아리랑]] | |
| 179 | ||
| 180 |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16|씨네21 - 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 |
| 181 | ||
| 182 |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9428|씨네21 - 한국영상자료원 X-파일 [2]]] | |
| 183 | ||
| 184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한국영상자료원 -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 |
| 185 | ||
| 186 |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한국영상자료원 -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 |
| 187 | ||
| 188 |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서울En - 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 |
| 189 | ||
| 190 |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뉴스톱 - 교과서에 실린 영화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 |
| 191 | ||
| 192 | [[https://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영상아키비스트협회 아카이브센터 - 관련 기사 보관]] | |
| 193 | ||
| 194 |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610100062|월간조선 -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특집 - 〈아리랑〉 필름의 흔적]] | |
| 195 | ||
| 196 | [[https://v.daum.net/v/8KQZfYKGt1?f=p|조선일보/다음 -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 |
| 197 | ||
| 198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