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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5 | 1 | [[분류:형태/영화]] |
| 2 | [[분류:국가/대한민국]] | |
| 3 | [[분류:상태/소실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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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2><:><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9D7435,#CBA86A><table bgcolor=#FFFCF3,#29211D><table color=#49392D,#F4EADC><bgcolor=#684332,#50372B> {{{#FFECC1,#FFECC1 '''{{{+2 아리랑}}}'''[br]Arirang[br]1926년 나운규 작품}}} || | |
| 6 | ||<:><width=30%><colbgcolor=#F0E1BF,#4A3C2B><colcolor=#654D25,#F5E5BE> '''제작 지역''' ||<(> 조선 — 일제강점기 || | |
| 7 | ||<:> '''감독·각본''' ||<(> 나운규[*AKS 이영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아리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5년 집필, 2023년 2월 7일 최종 수정. 제작사·개봉일·감독·배역 및 전해지는 줄거리를 참고했다.] || | |
| 8 | ||<:> '''제작사''' ||<(> 조선키네마프로덕션[*AKS] || | |
| 9 | ||<:> '''개봉일''' ||<(> 1926년 10월 1일[*KOFA90 한국영상자료원,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0990|〈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특별전]]. 2016년 10월 6~7일 행사 안내. 원작의 개봉일·개봉관, 후속작과 필름의 부재, 리메이크 상영 취지를 설명한다.] || | |
| 10 | ||<:> '''개봉관''' ||<(> 서울 단성사[*KOFA90] || | |
| 11 | ||<:> '''형태''' ||<(> 흑백 무성 극영화[*YNA10 김윤구, [[https://www.yna.co.kr/view/AKR20100813001000005|“나운규 영화 '아리랑' 필름 일본에 없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13일. 아베 컬렉션 조사 결과와 김연갑·이효인·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의 설명을 보도했다.] || | |
| 12 | ||<:> '''주요 출연''' ||<(> 나운규 · 신일선[br]주인규 · 남궁운[*AKS] || | |
| 13 | ||<:> '''현재 상태''' ||<(> [include(틀:소실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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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5 | [목차] |
| 16 | [clearfix] | |
| 17 | ||
| 18 | == 개요 == | |
| r5 | 19 |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의 무성영화'''이다.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이 제작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과 민족적 감정을 다룬 한국영화사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된다.[*AKS][*KOFA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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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5 | 21 | 이 문서의 대상은 '''1926년 원작의 움직이는 영상'''이다. 현재 상태는 '''소실됨'''이다. 작품의 개봉과 내용에 관한 기록, 광고·사진은 남아 있지만, 본편 필름은 확보되지 않았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장기간 수색한 유실영화로 본작을 설명한다.[*KOFA50 박수용·남선우·민병현,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webzine/BC_0000061074|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 웹진, 2024년 4월 22일. ‘1. 〈아리랑〉은 어디에?’의 수색·조사 기록을 참고했다.] |
| r1 (새 문서) | 22 | |
| r5 | 23 | 일본인 수집가의 소장설 때문에 일본에서의 조사도 이루어졌지만, '''이를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라는 뜻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같은 제목의 후속작·리메이크와 민요·음반은 원작 필름과 구별된다. |
| r1 (새 문서) | 24 | |
| r5 | 25 | == 작품과 전해지는 줄거리 == |
| 26 | 나운규는 주인공 '''영진''', 신일선은 여동생 '''영희''', 주인규는 '''오기호''', 남궁운은 영진의 친구 '''현구'''를 연기했다.[*AKS] | |
| r1 (새 문서) | 27 | |
| r5 | 2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리한 줄거리에서 영진은 정신적 충격을 겪고 고향에서 지내는 청년이다. 영희를 해치려는 기호와 이를 막는 현구가 다투는 동안, 영진은 사막에서 벌어지는 환상을 본다. 그는 낫으로 기호를 죽인 뒤 정신을 되찾지만 경찰에 붙잡혀 간다.[*AKS] |
| r1 (새 문서) | 29 | |
| r5 | 30 | '''이는 현존 본편을 감상한 요약이 아니라 문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남은 시나리오와 후대의 재창작을 통해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KOFA90] 따라서 후대 자료의 설명을 원래 상영본의 모든 장면·편집 순서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
| r1 (새 문서) | 31 | |
| r5 | 32 | == 상영 기록과 필름의 소실 == |
| 33 |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정종화'''는 2019년 기고에서 '''1952년 대구 만경관의 상영 기록'''을 언급하면서, 당시 사용한 상영용 프린트도 이후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JUNG 정종화,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이름 없이 롤만 남아 있을 수도… 찾는 노력 美로 확장해야]], 서울신문, 2019년 3월 26일자. 온라인 입력은 3월 25일. 1952년 상영 기록과 해외 소재 가능성에 관한 연구자의 기고이다.] | |
| r1 (새 문서) | 34 | |
| r5 | 35 | 한편 한국영상자료원의 2024년 회고는 본작을 '''한국전쟁을 거치며 필름이 유실된 영화'''로 설명한다.[*KOFA50] 이는 전쟁기를 포함한 보존 공백에 관한 설명이며, 특정 원본이나 사본의 폐기 일자를 제시한 기록은 아니다. |
| r1 (새 문서) | 36 | |
| r5 | 37 | 현재 확인한 자료에는 '''원본과 각 상영용 사본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처리 기록이 없다. 1952년의 상영을 언급한 문헌만으로 그해 모든 필름이 동시에 소실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
| r1 (새 문서) | 38 | |
| 39 | == 수색 과정 == | |
| r5 | 40 | === 1992년: 일본인 수집가와의 접촉 === |
| 41 | 1990년대 초에는 일본의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아리랑》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알려졌다. 2005년 씨네21에 실린 '''호현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1992년 일본을 방문해 아베를 직접 만났다.[*ABE92 임범,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8533|“폭탄 연구 아버지가 〈아리랑〉 등 필름 모아”]], 씨네21, 2005년 2월 15일. 호현찬이 1992년 아베를 만난 경위를 회고한 기사.] | |
| r1 (새 문서) | 42 | |
| r5 | 43 | 아베는 《아리랑》 등이 적힌 영화 목록을 보여주었지만, 필름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물 확인에는 응하지 않았다. 호현찬이 같은 해 받은 필름 한 통은 '''《인인애》'''라는 별개의 무성영화였으며, 《아리랑》은 아니었다.[*ABE92] |
| r1 (새 문서) | 44 | |
| r5 | 45 | 따라서 이 접촉은 '''소장 주장과 목록을 확인한 일'''이지, 《아리랑》 필름의 존재를 실물로 검증한 사건은 아니다. 다른 영화를 전달받았다는 사실도 본작의 확보와 구분된다. |
| r1 (새 문서) | 46 | |
| r5 | 47 | === 2005년 이후: 아베 컬렉션 조사 === |
| 48 | 아베가 '''2005년 2월''' 사망한 뒤 그의 소장품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YNA10] 한국영상자료원은 일본 문화청의 협조 아래 '''총 네 차례 현지 조사'''를 실시했으며, 일본국립필름센터와 함께 '''약 2,400편'''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한 자료에서 《아리랑》은 나오지 않았다.[*KOFA50] | |
| r1 (새 문서) | 49 | |
| r5 | 50 | 이 수치는 '''기관이 검토했다고 밝힌 영화의 수'''이다. 아베가 생전에 주장한 소장량이나 《아리랑》의 필름 권수와 섞어 사용하지 않는다. |
| r1 (새 문서) | 51 | |
| r5 | 52 | === 2010년: 조사 결과 보도 === |
| 53 | '''2010년 8월 13일''' 연합뉴스는 김연갑이 일본국립필름센터를 방문한 뒤, 아베 소장품에서 《아리랑》을 비롯한 한국영화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는 당시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도 공유받은 영화 목록에 본작이 없다고 밝힌 내용이 있다.[*YNA10] | |
| r1 (새 문서) | 54 | |
| r5 | 55 | 같은 기사에서 확인되는 소장목록의 항목은 '''‘아리랑/9권/현대극’'''이다. 그러나 목록의 기재와 필름 실물은 별개였다.[*YNA10] 기사 제목의 ‘일본에 없다’는 표현도 '''조사 대상이었던 아베 컬렉션의 결과'''와 구분해 읽어야 한다. 일본의 모든 기관·개인 소장처를 조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
| r1 (새 문서) | 56 | |
| r5 | 57 | === 2016년: 원작 없이 열린 90주년 특별전 === |
| 58 | 한국영상자료원은 '''2016년 10월 6~7일''' 개봉 90주년 특별전을 마련했다. 안내문은 원작 필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운규의 삶을 다룬 작품과 《아리랑》의 리메이크를 상영한다고 설명했다.[*KOFA90] | |
| r1 (새 문서) | 59 | |
| r5 | 60 | 따라서 ‘아리랑 특별전’이라는 행사명과 상영 기록이 있더라도, '''1926년 원작을 발굴하여 상영했다는 뜻은 아니다.''' |
| r1 (새 문서) | 61 | |
| r5 | 62 | === 2025년: 원본 스틸 사진의 공개 === |
| 63 | '''2025년 7월 25일''' 조선일보는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이 수집가에게서 입수한 사진을 '''1926년 영화의 원본 스틸 사진'''으로 소개했다. 김연갑은 전날인 7월 24일 이를 신문사에 공개했다.[*PHOTO25 유석재,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5/07/25/FPLFJLKEP5BVNDCP65UNPRI5R4/|[단독] 1926년 무성영화 ‘아리랑’ 원본 스틸사진 처음 발굴]], 조선일보, 2025년 7월 25일. [[https://v.daum.net/v/20250725050403405|다음 전재본]]으로 본문과 사진 설명을 확인했다.] | |
| r1 (새 문서) | 64 | |
| r5 | 65 | 보도에 따르면 '''1926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인쇄된 장면 사진의 원본'''으로, 영희가 영진을 보살피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같은 기사에는 '''1941년 6월호 《삼천리》'''에서 다른 장면 사진도 새로 확인했다는 설명이 있다.[*PHOTO25] |
| r1 (새 문서) | 66 | |
| r5 | 67 | 이 성과는 영화의 장면을 확인할 사진 자료가 늘어난 것이다. '''영화 필름의 발굴이나 움직이는 영상의 복구는 아니다.''' 또한 2025년 7월은 사진 공개가 보도된 시기이며, 정확한 입수일은 기사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
| r1 (새 문서) | 68 | |
| r5 | 69 | === 2026년: 개봉 100주년 학술행사 안내 === |
| 70 | '''2026년 5월 8일''' 한국영상자료원은 '''〈아리랑 100년과 한국영화의 미래〉'''의 개최를 안내했다. 공지에 제시된 행사일은 5월 16일이며, 작품의 동시대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연구자들의 논의 자리로 설명되어 있다.[*KOFA100 한국영상자료원, [[https://www.koreafilm.or.kr/kofa/news/news/BC_0000063495|[한국영상자료원 학술행사] '아리랑 100년과 한국영화의 미래' 개최 안내]], 2026년 5월 8일. 행사 일정과 취지를 확인했다.] | |
| r1 (새 문서) | 71 | |
| r5 | 72 | 이 공지는 '''100주년을 맞은 학술행사 안내'''로, 원본 필름의 발견이나 복원 완료 발표가 아니다. |
| r1 (새 문서) | 73 | |
| r5 | 74 | == 현존 자료와 판본 구별 == |
| 75 | === 문헌과 사진 === | |
| 76 | 본편의 내용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다. 다만 '''작품에 관한 자료의 보존과 본편 영상의 보존은 구분'''된다. | |
| r1 (새 문서) | 77 | |
| r5 | 78 | ||<(><table align=left><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9D7435,#CBA86A><table bgcolor=#FFFCF3,#29211D><table color=#49392D,#F4EADC><rowbgcolor=#684332,#50372B><rowcolor=#FFECC1,#FFECC1><width=23%> '''자료''' ||<(> '''확인되는 범위''' ||<(> '''출처''' || |
| 79 | ||<(> '''당시 신문 광고''' ||<(> 제목·홍보 문구·당시 크레디트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신문은 1926년 10월 3일자 매일신보 광고를 소개한다.[*AD 손성진, [[https://www.seoul.co.kr/news/2021/04/12/20210412030002|[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서울신문, 2021년 4월 12일자. 온라인 입력은 4월 11일. 매일신보 광고 이미지와 크레디트에 관한 설명을 참고했다.] ||<(> [[https://www.seoul.co.kr/news/2021/04/12/20210412030002|광고 소개 기사]] || | |
| 80 | ||<(> '''시나리오·줄거리 문헌''' ||<(> 작품 내용의 재구성에 쓰인다. 영화의 실제 편집·영사본과 동일한 매체는 아니다.[*KOFA90][*AKS]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276|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
| 81 | ||<(> '''촬영 현장 기념사진''' ||<(> 한국영상자료원이 제공한 촬영 현장 사진이 연구자의 기고에 실려 있다.[*JUNG] ||<(> [[https://en.seoul.co.kr/news/entertainment/movieN/gks/2019/03/26/20190326022004|서울신문 기고]] || | |
| 82 | ||<(> '''2025년 공개 사진''' ||<(> 원본 스틸로 소개된 사진과 잡지에서 확인한 장면 사진. 영사 가능한 필름은 아니다.[*PHOTO25] ||<(> [[https://v.daum.net/v/20250725050403405|사진과 보도]] || | |
| r1 (새 문서) | 83 | |
| r5 | 84 | [clearfix] |
| r1 (새 문서) | 85 | |
| r5 | 86 | === 사진의 출처와 감독 표기 === |
| 87 | 2019년 연구자 '''석지훈'''은 널리 쓰이던 《아리랑》 사진 가운데 하나가 '''1926년 1편의 사진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글의 소개와 발췌는 영상아카이브 관련 정보공유센터에도 보존되어 있다.[*STILL19 석지훈, 「교과서에 실린 영화 〈아리랑〉 사진은 '아리랑 1편' 사진이 아니다」, 뉴스톱, 2019년 5월 24일. [[https://www.archivecenter.net/avarchives/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54419|관련 기사 보관 항목]]의 발췌와 서지정보를 확인했다. 원 기사 전체를 직접 열람한 것은 아니다.] | |
| r1 (새 문서) | 88 | |
| r5 | 89 | 또한 당시 광고에는 감독·각본에 '''스모리 슈이치''', 원작·각색에 나운규의 호인 '''춘사'''를 표기한 사례가 있다.[*AD]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영상자료원은 본작을 '''나운규 감독의 작품'''으로 정리한다.[*AKS][*KOFA90] 광고의 표기와 후대 영화사의 저자 판단을 구분하여 기록할 필요가 있다. |
| r1 (새 문서) | 90 | |
| r5 | 91 | === 후속작·리메이크와의 구별 === |
| 92 | 1930년 이구영 감독의 '''《아리랑 후편》'''과 193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3편》'''은 별도 후속작이다.[*KOFA90] 같은 배우나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그 자료를 1926년 원작의 영상으로 볼 수는 없다. | |
| r1 (새 문서) | 93 | |
| r5 | 94 | 후대의 리메이크 가운데 '''유현목 감독의 1968년 《아리랑》'''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상영 목록에 35㎜ 필름으로 기재되어 있다.[*REMAKE68 한국영상자료원, [[https://www.koreafilm.or.kr/movie/PM_006484|아리랑 — 유현목, 1968]]. 감독·출연진·상영 포맷과 원작의 리메이크라는 설명을 확인했다.] 이 영화의 현존이나 상영은 '''1926년 필름을 복원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
| r1 (새 문서) | 95 | |
| r5 | 96 | == 해외 소장설의 확인 범위 == |
| 97 | 일본의 아베 컬렉션은 실제 조사 결과가 있는 사례지만, '''북한이나 미국 소재설까지 같은 수준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정종화는 2019년 기고에서 북한 소장설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이나 의회도서관(LOC)의 미확인 필름도 조사할 여지를 제시했다.[*JUNG] | |
| r1 (새 문서) | 98 | |
| r5 | 99 | 이는 '''연구자가 제안한 추가 탐색 방향'''이다. 해당 기관이 《아리랑》을 소장한다고 확인한 목록이나 답변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특정 기관이나 개인을 현 보관자로 적으려면 작품 식별과 실물 확인이 별도로 필요하다. |
| r1 (새 문서) | 100 | |
| r5 | 101 | == 현재 상태 == |
| 102 | '''소실됨 —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본편 기준.''' 확인 기준일인 '''2026년 9월 13일'''까지 검토한 자료에서는 본편 또는 잔존 영상의 확보를 입증하는 발표를 확인하지 못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수색 회고와 2025년 사진 발굴 보도 역시 본편 필름이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KOFA50][*PHOTO25] | |
| r1 (새 문서) | 103 | |
| r5 | 104 | '''사진·광고·시나리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본편을 ‘부분적으로 발견됨’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른 감독의 리메이크와 후대의 재연·해설 영상도 원작의 잔존 영상과는 별개이다. |
| r1 (새 문서) | 105 | |
| r5 | 106 | 다만 모든 기관과 개인 소장처의 사본 부재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남은 수색 대상은 '''1926년 원작으로 식별할 수 있는 필름 원본·사본 또는 그에 대응하는 영상 자료'''이며, 정확한 보관처와 개별 사본의 소실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
| r1 (새 문서) | 107 | |
| r5 | 108 | == 각주 == |
| r1 (새 문서) | 109 | [각주] |